부산영화제 개막작 '2046' 감독 왕자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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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토리(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스토리 어바웃 러브(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왕자웨이(王家衛.사진) 감독은 지난 7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2046'을 그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사랑의 정의에 대한 정답은 아니지만 답이 될 수 있는 여러 보기가 들어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 프랑스 칸영화제에 출품됐던 '2046'은 강렬했던 사랑의 기억을 지우지 못하는 주인공이 여러 여인을 만나지만 끝내 새로운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는 내용의 비극적 작품. '화양연화'(2000년)의 후속편 격이다. 주연 량차오웨이를 비롯해 장만위.궁리.장쯔이.기무라 다쿠야 등 유명 배우가 대거 출동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8일 부산 해운대에 짙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감독은 늘 그래왔듯이 짧은 답변으로 일관하며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아비정전''중경삼림''해피 투게더''화양연화'에 이어 또 사랑이다.

"사랑은 사람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사물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누구나 계속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있다. 나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사랑은 우연인가.

"사람은 시간과 장소, 심리적 상태에 따라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못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뒤늦게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그게 인간의 존재적 특성이다."

-마음속에만 품고 있는 사랑, 육체적인 사랑, 상대의 사랑을 도와주는 헌신적인 사랑 등 다양한 사랑이 나온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은.

"그 모든 게 포함된 사랑이다. 관객마다 유심히 본 대목이 다르다. 여러 형태의 사랑 중 자신에게 간절하게 느껴지는 사랑이 다르기 때문일 거다. 나는 그 모든 형태에 사랑이 부분적으로 들어있다고 있다고 믿는다."

-완성에 5년이나 걸렸다. 작업이 더뎠던 이유는.

"5년 전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영감을 얻었다. 처음에는 몇 달 안에 만들려고 했는데 배우 일정을 맞추고 해외 전문가에게 음악.컴퓨터 그래픽 등을 맡기다 보니 길어졌다. 실제 촬영과 편집은 8개월 정도 걸렸다."

-'2046'은 호텔의 방 번호이기도 하지만 홍콩이 다시 중국 땅이 된지 50년 되는 해라는 상징이 있다는데.

"홍콩이 반환된 1997년 많은 사람이 '세상이 어떻게 바뀔까'하는 의문을 품었다. 세상에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영화에는 이에 대한 내 나름의 질문과 답이 들어있다."

-초호화 캐스팅이다. 궁리나 기무라 다쿠야 같은 스타를 조연으로 쓸 필요까지 있나.

"짧게 출연한다고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어떤 관객은 그 짧은 대목을 더 오래 기억한다."

-니콜 키드먼이 나오기로 한 다음 영화 '상하이에서 온 여인'도 사랑이 주제인가.

"아직 내용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 사랑이 아니라 공포를 다룬 일종의 스릴러다."

부산=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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