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24시] '에이즈 母子'의 선거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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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80년대 중반 일본의 에이즈 약화(藥禍)사건 때 정부.제약회사에 맞서 싸웠던 모자(母子)가 선거혁명을 일으켰다.

22일의 중의원 도쿄(東京)21구 보궐선거에서 사건 당시 피해 가족이던 가와다 에쓰코(川田悅子.51.여)후보는 무소속으로 나와 기성 정당 후보를 따돌려 파란을 일으켰다.

에이즈 약화는 후생성이 미국제 비가열 혈액제제가 에이즈에 오염된 사실을 알고도 제약회사에 판매 허가를 내주면서 혈우병 환자 1천8백여명이 에이즈에 감염되고 4백여명이 숨진 사건.

당시 가와다는 아들 류헤이(龍平.24)가 비가열 혈액제제로 에이즈에 걸리면서 고졸 출신의 평범한 주부에서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혈우병을 지키는 부모 모임' 을 결성해 에이즈 환자를 차별하는 법 개정운동을 폈고, 소송 원고단 부대표를 맡았다.

운동 과정에서는 아들의 실명을 공개했고, 피해자 모두의 어머니가 됐다. 류헤이는 지금도 에이즈 문제와 관련해 TV 단골 출연역을 맡고 있다.

가와다가 출마를 결심한 것은 선거 공고 3주전. 시민.환경파 무소속 의원 모임을 추진하는 나카무라 아쓰오(中村敦夫)의원의 권유를 받고서다.

공고 전 후보를 내지 않은 공산당으로부터 받은 공천 제의를 뿌리치고 아들과 함께 시민에 의한 정치 쇄신을 외쳤다.

에이즈 약화사건을 "정(政).재(財).관(官)의 합작품" 으로 쏘아붙이면서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無黨派) 자원봉사자들은 가와다의 버팀목이었다. 인터넷은 결정적인 몫을 했다.

류헤이가 만든 홈페이지를 보고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었고, 가와다 진영이 모르는 운동 지원 홈페이지가 잇따라 개설됐다. 풀뿌리 선거운동의 전형이었다.

그래도 선거전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꼴이었다.집권 자민당은 당 조직을 풀가동했다.

선거구에는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간사장을 비롯한 1백여명의 의원이 들락거렸고 탄탄한 고정표를 자랑하는 공명당의 지원도 받았다.

이 지역 기업체와 각종 협회를 찾은 의원비서는 9백여명에 달했다. 제1야당 민주당도 전례없는 힘을 쏟았다.

그러나 뚜껑을 연 결과 두 당의 조직 선거는 풀뿌리 무당파 바람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지난 15일 나가노(長野)현 지사선거에 이어 다시 정당이 시민후보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가와다는 당선 후 "이번 승리로 새 정치의 흐름이 생겨날 것으로 확신한다. 시민에 의한 정치가 전국으로 퍼지길 바란다" 고 말했다. 기성 정치권이 제몫을 하지 못하는 한 시민의 선거혁명은 이어질 게 틀림없어 보인다.

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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