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군대 안 갔다” 허위 칼럼 쓴 교수 입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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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장관승 팀장이 정부 고위 공직자들의 병역 비리 허위 사실을 인터넷에 퍼뜨린 대학교수와 인터넷신문 칼럼니스트 등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경찰은 사실 확인 없이 칼럼이나 명단을 유포한 네티즌 31명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다. [조용철 기자]

#1.지난해 9월 24일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에 ‘이명박부터 정운찬까지…신의 아들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제목의 칼럼이 게재됐다. 병역 면제를 받은 고위 공직자를 비판하는 칼럼이었다. 병역 면제를 받은 고위 공직자의 실명이 게재됐다. 글쓴이는 S대 홍모(44) 교수였다. 이른바 ‘진보 논객’의 자극적인 글은 네티즌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병역 면제자로 명단에 포함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과 안병만 교육기술과학부 장관은 군 면제자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 수석은 육군 병장, 안 장관은 공군 중위로 병역을 마쳤다. 당사자들이 항의하자 홍 교수는 이날 낮 12시30분쯤 두 사람의 이름을 뺀 수정본을 실었다.

#2.‘사이버 논객’으로 알려진 박모(37)씨도 지난해 9월 2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병역 면제 고위 공직자에 대한 도표를 만들었다. 고위 공직자 15명의 병역 면제 내용을 정리한 표였다. 눈에 쏙 들어오는 도표는 네티즌의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 하루 평균 방문자가 수십 명 수준에서 4000여 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이 도표에도 병역을 마친 이 수석과 안 장관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25일 홍 교수와 박씨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두 사람은 고위 공직자의 병역 면제에 대한 허위 사실을 근거로 인터넷에 칼럼을 쓰거나 글을 올린 혐의다. 지난해 10월 초 이 수석과 안 장관은 자신들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불특정 네티즌을 고소했었다. 경찰은 홍 교수·박씨와 함께 네티즌 박모(30)·나모(26)씨와 또 다른 박모(40)씨 등 모두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홍 교수와 박씨가 쓴 병역 비리 공직자 명단을 처음 인터넷에 올린 사람은 박모(30)씨였다. 박씨는 지난해 7월 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병역 면제 고위 공직자 5~6명의 이름을 올렸다. 이 글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안병만 교과부 장관이 추가됐다.

지난해 9월 경찰의 병역 비리 수사가 관심을 끌면서 병역 비리 명단이 15명가량으로 불어났다.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 관계자는 “박씨는 ‘사실 확인 없이 재미로 명단을 올렸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지명도 있는 필자들에 의해 다시 사용되면서 급속도로 퍼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사실 확인을 제대로 못한 부분은 실수로 인정한다. 하지만 명예훼손으로 형사 입건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또 “이 같은 처사는 교수로서의 나의 명예와 언론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반박했다. 박씨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경찰은 이들 외에 네티즌 31명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다. 대부분 사실 확인 없이 칼럼이나 명단을 유포한 사람들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허위 사실을 퍼다 나르기만 해도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된다. 하지만 대부분 최초 유포자가 아니면 불법이 아니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들 중에는 의사와 교사, 중앙부처 공무원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글=정선언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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