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워낭』 펴낸 소설가 이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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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얘기지만 뭉클하고 훈훈하다. 이순원(52·사진)의 새 장편 『워낭』(실천문학사)은 잊혀지는 것에 관한 소설이다. 대상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소다. 워낭은 소방울. 이씨는 “몇 십 년 전만 해도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농경의 동반자”였다고 강조한다. 한 집 식구란 뜻에서 ‘생구(生口)’라 불렀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태어난 어린 주인은 소를 ‘한날이’라고 부르며 친구처럼 자랐다. 아내 등 사랑하던 사람이 죽어 환생한 것으로 여겨진 소는 사람보다 더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일하는 소는 요즘 사라졌다. 육우로 길러질 뿐이다. 이씨는 이런 얘기를 강원도 대관령 아랫동네의 한 집안 4대와 얽힌 ‘12대 소 가계’를 통해 풀어낸다.

이씨는 25일 “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감명 받아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길렀던 소, ‘검은눈’이 생각난 것이다. 조상이 조선시대 참의 벼슬을 지냈다고 해서 소설 속에서 차무집으로 표현된 집안도 실은 작가네 얘기다. 처음으로 코뚜레를 뚫거나 새끼를 받는 일, 사산한 송아지를 먹을 것이냐 소에 대한 도리를 따져 묻을 것이냐를 고민하는 주인 등 에피소드가 생생하다. 일제시대 안주인을 문초한 순사를 들이받았다가 사살당한 화둥불소, 한국전쟁 때 소로 인해 엇갈리는 민심 등 시대적 상황도 묻어난다.

문학비평가 루카치식으로 표현하면 『워낭』은 창공의 별빛이 갈 길을 비추고 세계와 자아가 서로에게 낯설지 않던 시절 얘기다.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일까.

이씨는 “과거 경작을 위해 논·밭에서 만났던 소를 요즘은 우유·고기 등의 형태로 식탁에서 만난다. 그렇게 만나더라도 예전 사람과 소의 관계를 기억해 건강하게 만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고기 맛을 좋게 한다며 빈혈을 유발하는 사료를 먹이고 0.4평의 공간에서 700㎏짜리 소를 키우는 일들은 반성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씨는 지난해 강원도 일대에 제주도 올레길과 비슷한 산책로 ‘바우길’을 내는데 땀을 쏟았다. 산간 마을들을 잇는 옛길 10개 코스, 150㎞를 찾아냈다. 이씨는 “5월부터 주말마다 뜻 맞는 사람들과 걸어서 길을 냈다. 소설이 잘 써졌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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