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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의 컬처코드 (36) 아이돌도 ‘아이들’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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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선미가 미국 생활을 유난히 힘들어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지난해 10월 일시 귀국해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미국서 매일 울며 잠이 들었다. 우리를 모르는 분들 앞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MBC ‘무릎팍도사’에 나와서도 눈물을 보였다.

동방신기 [중앙포토]


# 최근 문화의 대세는 아이돌이다. 대중음악, TV, 뮤지컬 가릴 게 없다. 외모·춤 같은 비주얼뿐 아니라 가창력에 끼와 입담까지 갖춘 만능 엔터테이너들이다. 원더걸스는 물론 지난해 일본에서만 음반·DVD를 900억원 넘게 팔아 치운 동방신기 등 한류의 주역도 아이돌이다. 특히 소녀가수 보아로 상징되는 ‘아이돌 한류’는 아이돌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바꿔놓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10대 초·중반 연예계에 뛰어드는 것에 대한 일각의 우려는, 연예계 인력 조기 양성론에 밀려 사라졌다. 대형기획사의 연습생 모델이 뿌리내렸다.

# 정작 팬들은 그들의 삶에 대해 아는 게 그리 많지 않다. 박진영은 “아이돌의 몸 만들기나 댄스 훈련은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것보다 더 피 말리며 어렵다”고 말한 적 있다. 하루 1000칼로리 내외 식단으로 마른 몸매를 유지하는 걸 그룹들은 어떤가. TV에서 보여주지 않는 멤버간 경쟁과 갈등도 적잖다.

해체된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멤버 환희와 브라이언은 “팀 말기, 둘의 사이가 너무 나빠 마지막 앨범은 심지어 따로따로 녹음했다. 물론 대중 앞에서는 친한 척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연습생 기간을 8년이나 거친 2AM의 조권 역시 “매일 잘린다는 긴장감 속에서 살았다. 나 이후에는 그렇게 장기간 연습생은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살인적인 스케줄, 사생활에 대한 철저한 관리·통제도 피할 수 없다. 연예활동 외 모든 것을 매니저에게 의탁하다 보니 은퇴 이후 일상에 적응하지 못해 힘겨워하는 경우도 많다.

# 전속계약을 둘러싼 동방신기와 소속사의 법정분쟁이 한창일 때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씨는 “아이돌도 아이들”이라고 썼다. 청춘을 반납하며 음악과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아이돌 스타들도, 인권과 사생활을 보호 받아야하는 10대 청소년 아이들이라는 뜻이다. 박영목 변호사는 『연예인 전속계약서 잘 쓰는 법』에서 “(아이돌 연예인이) 행복한 전속계약 10년은 유효지만 불행한 10년은 무효”라고 쓰기도 했다.

최근 문화평론가 최규성씨는 동방신기의 해체설과 관련 "애국심이 필요하다”고 했다가 팬들의 반발을 샀다. 한류도 중요하고 동방신기의 해체는 원치 않지만 그것은 국익도 뭐도 아니고 오직 멤버들의 행복하고 자발적인 선택일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아이돌 전성시대. 이제는 그들의 화려한 성과뿐 아니라, 개개인의 행복과 선택에도 관심을 가질 때다. 시킨 대로 춤추고 노래 부르고 수익으로 평가 받다가 어느 날 폐기 처분되는 일이 반복돼서야 하겠는가. 또 모두에게 헝그리정신으로 무장한 성공담을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제는 진정 스스로 행복한 아이돌 모델이 나와야 한다. 18세 소녀 선미의 선택이 각별한 이유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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