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의 아이티 구호활동기 ③ 참사 현장에서 한국구조팀을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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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대지진 참사현장에 한국인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아이티 지원팀도 그 중 하나다. 당 청년위원장인 강용석 의원을 포함한 6명의 지원팀은 22일(현지시각)부터 포르토프랭스에서 구호활동을 시작한다. 17일 한국에서 출발한 지 무려 5일 만이다. 강 의원이 아이티 현지에서 생생한 구호활동기를 조인스닷컴에 보내왔다. 다음은 강 의원의 글 전문.

<강용석 의원의 글 전문>

도미니카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아이티에 가면 당장 숙소와 식사가 문제가 되니 텐트와 침낭 등을 꼭 준비하고 식수와 음식도 가능한 준비해 가야한다고 들었습니다. 또 저희의 원칙이 될 수 있으면 현지에 계신 분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고 자급자족한다는 것이어서 텐트를 사려고 열 군데 가량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지에 가서 텐트를 쳐보니 텐트가 너무 조잡해서 도저히 6명이 잘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할 수 없이 제2계획이었던 교민 숙소에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다행히 소나피에서 의류공장을 하는 안철수 사장과 현지 직원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큰 집이 있어 그 곳에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티 현지인들은 추가 여진의 공포 때문에 집밖에 나와서 밤을 지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지붕이 있는 집에서 잘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새벽녘에 잠이 깨서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정리하고 있던 중 책상이 덜덜덜 떨리고 집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었습니다. 한 3초쯤 됐을까, 진동이 멈췄습니다.

제 인생에서 두 번째로 지진을 경험하는 순간 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삿뽀로의 치토세 공항에서였는데 그때보다 이번이 훨씬 강력했습니다. 지금 아이티에서 진도 3~4 수준의 여진은 거의 매일 있는 상황입니다. 소방구조대 1진은 오전에 귀국하고 오후부터 4명 남은 소방대원들이 방역작업을 시작하기로 했기 때문에 저희는 오전에 지진피해가 심각하다는 프로토프랭스 시내로 갔습니다.

도미니카에서 렌트한 차량은 둘 다 프로판 가스와 휘발유 겸용 차량입니다. 그런데 아이티에선 가스든 휘발유든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상황이어서 한 대는 숙소에 두고 한 대로만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지도를 구할 수 없어 덮어놓고 길을 나섰습니다. 구호대가 있는 지역과 저희가 머문 곳은 정상적으로 가도 40분 정도가 걸릴 정도로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그 먼 거리를 오로지 미국대사관, 손 모양의 조형물, 소나피라는 세가지 랜드마크에 의존해서 찾아가려고 했으니 세 시간동안 엄청 고생했답니다.

아이티에는 2004년부터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유엔 아이티 안정화군(MINUSTAH, UN Stabilization Mission in Haiti)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현재 MINUSTAH로 각국에서 파견된 군인 7천명과 경찰 2천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한국에선 유일하게 이선희 소령이 근무하고 있답니다. 이선희 소령은 반기문 유엔총장이 17일 방문했을때 '충성'하면서 경례를 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소령을 만나보지 못했지만 교민들 사이에선 그 얘기가 벌써 화제가 돼있더군요. UN군이 9000명이나 되는데다가 이번 지진으로 UN직원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호텔이 무너져 내려 UN직원과 MINUSTAH의 피해가 컸습니다. UN군은 하늘색 모자를 쓰기 때문에 어디서나 눈에 확 띕니다.

시내를 세 시간이나 헤매 다녔지만 신호등이라고는 딱 하나를 봤습니다. 그럼 교차로를 어떡하냐구요? 로터리가 많은데 원래 로터리의 문제점이 차량이 많아지면 혼잡이 가중된다는 점이잖아요. 도로는 비좁은데 차량은 많은 편이어서 트래픽이 극심합니다. 교통정체로 하도 서 있어서 세 시간동안 실제로 달린 거리는 얼마 안됩니다.

포르토프랭스 시내를 통틀어서 제대로 된 건물은 미국 대사관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아이티에만 미국인들이 4만5000명이나 거주하고 있어서인지 미국에선 지진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포르토프랭스 항구 앞에 항공모함을 띄워 구호물자를 실은 수송기를 계속 보내고 병원선을 투입해서 환자들 치료에 적극 나서고 있었습니다.

오후 1시가 넘어서야 한국구조대가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시내를 돌아다니다 와서 무척 시장했는데 의료진들이 3분카레와 김치국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우리가 측은하게 느껴졌는지 간호사 분들이 “식사 안하셨으면 와서 같이 하시라”고 해서 염치불구하고 숟가락을 얹었습니다. 배고프면 체면도 사라지는 법이죠.

허겁지겁 늦은 점심을 마치고 의사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구호단장과 의료단장은 진료장소 답사를 위해 외부에 나가서 장선호 박사와 해외긴급구호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습니다. 장박사는 성북구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개업하고 있는데 구호 의료진에 참가하기 위해 병원을 휴업하고 왔답니다. 저희가 준비한 성금을 구호단에 전해달라고 장 박사께 드렸습니다.

아울러 소방구조대 중 방역작업을 위해 잔류한 4명 중 최종춘 팀장께도 성금을 전달했습니다. 어제는 소방구조대가 오늘 오후에 방역작업을 시작한다고 해서 함께 하려고 했는데 마이애미를 경유하는 과정에서 방역기를 실은 짐이 제대로 도착하지를 못했답니다. 서둘러 도미니카 쪽에 방역기를 수배하고 있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오늘은 방역작업이 어려울 것 같다네요.

우리나라가 해외에 구조인력을 처음 파견한 것은 2003년 이란 밤(Bam)시 대지진 때 였답니다. 2004년 남아시아의 쓰나미 때는 5천만불 상당의 지원과 6개의 구조팀이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태국으로 나갔구요. 2007년에는 체계적인 활동을 위해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범정부적 차원에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답니다. 이제는 상당히 체계적이고 자세한 메뉴얼이 만들어져 재난발생시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아이티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구조팀이 도착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구조팀의 안전 문제 때문에 현장투입이 늦어졌습니다. 지진이 12일에 발생했는데 17일에야 소방구조대가 활동을 시작하게 되어 이미 인명을 구조하기엔 시간적으로 늦어버렸습니다. 게다가 미국이나 프랑스는 자국군대가, 일본의 경우는 유엔군이 구조대와 의료팀의 안전을 위해 경호를 해주는데 우리나라 의료팀은 유엔과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경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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