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그림이 되어 그림은 시가 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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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마음속에 박힌 말뚝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인은 그림에서 시를 읽고, 화가는 시에서 그림을 보았다. 1950년 동갑내기에 태어난 곳도 경상도 같은 땅이어서일까.

정호승 시인은 화가 박항률씨의 그림과 처음 만난 순간을 "갑자기 '쿵!'하고 바위 하나가 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그 바위가 꽃잎이 되어 내 가슴의 또 다른 한 곳에 사뿐히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화가의 그림에 드리워져 있는 침묵과 고요함의 깊이는 또한 시인의 시가 품고 있는 울림이기도 하다.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라는 정씨의 시에 붙인 화가의 그림 '눈부처'는 맑고 투명한 소녀의 얼굴이 그대로 시다.

11일부터 17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는 영혼이 닮은 두 사람이 어우러진 시화전이다.

시와 그림이 사랑과 그리움의 바다에서 하나가 되었다. 꽃이 된 소녀, 말이 된 소년, 새가 된 누이는 정물 같은 옆 얼굴로 명상에 들어있다. 끼끗한 그 자태에서 "새벽 별의 발소리가 들리고" "푸른 하늘의 바람소리가" 불어온다. 시인은 "그들의 얼굴에서는 고통을 뛰어넘은 자의 한 순간이 엿보이는 듯해서 아늑하다"고 썼다.

전시와 함께 나온 시화선집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랜덤하우스중앙 펴냄)에 해설 '그래도 사랑한다, 살아야겠다'를 쓴 이경철 '문예중앙' 주간은 두 사람의 작품을 "순수.사랑.그리움의 마음속을 스스로 찬찬히 들여다보게 하는 여러분의 눈길"이라고 풀었다. 지난해 그림과 소설의 만남을 엮은 '그림 소설을 읽다'전을 기획했던 '문학과 문화를 사랑하는 모임'(이사장 김주영)이 마련한 이 전시는 서울에 이어 20~31일 안양 교보문고에서 계속된다.

14일 오후 3시 인사아트센터, 20일 오후 4시 안양 교보문고에서 정 시인과 박 화가의 공개 좌담회가 열리고 6월에는 작품에 등장하는 경북 영주의 부석사를 찾는 문학미술기행도 준비돼 있다. 02-736-102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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