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노벨평화상] WP '노벨 평화상' 사설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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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노르웨이 노벨 평화상위원회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특히 북한과의 화해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그를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역사는 金대통령이 자유와 민주주의가 인종.대륙.문화의 차이를 넘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이자 염원임을 증명했기 때문에 상을 받았다고 기록할 것이다.

金대통령이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 온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은 아시아엔 자율적 정치체제가 적합하지 않다고 믿었다.

물론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에 자율적인 정치체제를 부여했고 인도도 독립적인 정치를 유지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 교과서엔 동아시아 지역이 지나치게 계급적이거나 유교적이거나 혹은 가난하거나 인구가 많아 자율적인 통치가 어렵다고 적혀 있었다.

아시아 지도자들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심지어 金대통령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며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한국의 권위주의 정치인들을 설득했던 미국도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그의 노력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金대통령은 결코 그의 신념을 잃지 않았다. 그는 투옥.추방.가택연금을 겪었다. 1971년엔 암살 시도로 추정되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2년 뒤에는 바다에 수장당할 뻔했다. 87년 한국인들이 봉기해 민주선거를 쟁취하기까지 당시 62세였던 金대통령은 일반적인 정치인의 삶을 살지 못했다.

金대통령의 오랜 투쟁에 부분적으로 힘입어 오늘날 한국뿐 아니라 대만.필리핀, 그리고 인도네시아에도 민주주의가 찾아왔다.

말레이시아나 홍콩 사람들처럼 아직 자유를 찾지 못한 이들은 영감을 얻기 위해 金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역시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처럼 아직도 족쇄가 채워져 있는 지도자들은 金대통령에게서 도움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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