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벨상 이후 정국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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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벨평화상 위원회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했다는 발표는 그동안 정치실종과 사회갈등, 그리고 경제위기설로 찌들대로 찌들어온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고 축제분위기로 모는 낭보(朗報)임에 틀림이 없다.

노벨상이 제정된지 1백년이 지나 처음으로 우리가 받는 것임에 수상의 의의는 더 없이 값지다.

그래서 우리 보통시민도 민족적 긍지를 느끼면서 金대통령을 서로 축하하고 영광을 나눠 갖

고 싶어한다.

최근 민생을 위한 '참정치' 의 실종 속에서, 닫힌 병원의 문밖에 서서 세상과 운명을 한탄하던 시민들로선 국정의 책임자요, 현실정치의 주도력인 金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사실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金대통령 또한 노벨평화상 수상의 영광이 자신과 민족, 그리고 나라의 미래와 관련한 멍에임을 누구보다 잘 숙지하고 있으리라 본다.

학자와 언론인에서 시작해 여염집 아낙네에 이르기까지 이제 상견(相見)의 화두는 '노벨상 이후' 金대통령의 행보와 거취에 집중되고 있다.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상생의 정치든 큰 틀의 정치든 정치가 잘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빨리 당겨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고 있다.

*** 국민통합 큰 정치 펼쳐야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金대통령은 지금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 와 한반도 '평화 및 통일' 과제에 관한 자신의 새로운 역할과 기능에 대해 뭔가 구상하고 있을 것 같다.

대통령의 '노벨상 이후' 구상과 추진과정은 우리의 미래에 절대적 영향을 가할 것이기에 우리 시민은 낙관과 불안감의 동시성 속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노벨평화상의 이상을 좇아 우리의 민주주의 공고화에 더 큰 기여를 하고자 한다면 대통령은 '정치는 현실' 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는 수밖에 없다.

오히려 정치란 '이상' 을 만들어 내는 고뇌의 예술이라는 정의를 좇아야 한다.

더 이상 'DJ는 당파적 투사' 가 아닌 여야를 함께 추스르고 보수와 진보를 포용하는 국민적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어야만 한다.

민주적 정당정치의 ABC가 정권의 획득과 유지라 하여 '정권재창출' 의 주도력으로 기능하려고 할 때 우리의 현 민주주의 정치수준은 그를 노벨평화상의 위계에서 흙탕으로 끌어내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범국민적 정치 지도자로의 변신은 오늘의 DJ를 있게 한 '여당동지' 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성숙된 민주주의로 그들과 국민 모두를 이끄는 상장(相長)의 과정이 될 수 있다. 노벨평화상의 상징은 이러한 계기를 마련한 하늘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 대북정책 비판 귀에 담길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金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 의 과정을 앞당기는 것이 절체절명의 민족적 과업이라는 믿음을 더욱 굳혀나갈 것 같다.

임기 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국가연합과 연방제 정신을 교접시킨 '통일기구' 를 만들고, 남북경제 공동체의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 것을 상정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의 접근에 있어 '공학적' 사고는 금기사항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나 북한은 자기 나름의 국가정체성(체제의 성격과 미래지향 이념, 그리고 사회운영방식)을 구축하고 이에 따라서 자기 국민을 정치사회화 교육시키면서 국민통합을 이룩해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존립이 가능했다.

남북화해와 관계개선이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필수적 단계임을 인정하더라도, 이것만을 위해 각자의 정체성과 대내적 국민통합을 해친다면 궁극에 가서는 평화와 안전이라는 허구 속에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는 꼴이 되고 만다.

한반도 평화와 안전이라는 것은 남북간의 군사적 대결상황의 회피에 대한 정치지도자간의 합의라든가, 새로운 국가형태에 대한 국민투표 찬성으로만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족 통합(통일)은 결국 정치통합을 의미하며 정치통합은 현 남북의 2개 국민이 한개의 국민이 됨을 의미한다.

통일형식이 어떠한 모양으로 귀결돼 가든 기존의 국가정체성의 수정 혹은 포기를 동반할 것이기에 우리의 국내 통합은 더없이 중요하다.

특히 체제이념이 대립 상극적일 경우 '타협에 의한 통합' 을 기대하는 것은 천진난만한 것임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 과제에의 접근에 있어 속도와 방식, 그리고 지향점 등에 대한 비판과 대안적 사고를 경청하면서 새로운 구상을 해줬으면 한다.

김동성 (중앙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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