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우리법연구회로 인해 마치 판사들이 편향돼 있는 것처럼 오해를 받게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학술단체로 등록된 연구회가 정치적 활동을 했다는 근거가 없는 이상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다”고 했다. 과거 군(軍)의 ‘하나회’는 정치 군인들의 사조직으로 규정돼 와해됐지만 연구회의 경우 정치 활동을 했다거나 인사 등에서 서로를 끌어주는 사조직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공식 대응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논란을 더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 부장판사는 “연구회 회원들이 반발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일본의 ‘청년법률가협회(청법협)’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일본 법조 전문기자가 펴낸 『최고재판소 이야기』에 따르면 청법협은 진보 성향 판사와 변호사들의 모임으로, 소속된 판사가 당시 전체 판사의 10%(225명)에 육박했다. ‘진보 판결’ 논란 속에 내연하던 청법협 문제에 불을 붙인 것은 1969년 8월 ‘재판 관여 편지’ 사건이었다. 한 지방법원장이 자위대 관련 사건을 맡은 판사에게 편지를 보내 재판에 관여하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청법협 소속인 해당 판사가 이 단체의 동료 판사들에게 이 편지의 사본을 보내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다음 해 초 이시다 가즈토(石田和外) 최고재판소 장관(우리의 대법원장)은 “정치권이 사법부에 개입할 틈을 줘선 안 된다”며 본격 대응에 착수했다. 같은 해 4월 최고재판소는 담화를 통해 “정치적 색채를 띠는 단체에 가입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청법협 소속 판사보를 판사 임용에서 탈락시키는 등 법관들의 청법협 탈퇴를 유도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일본 사법부의 단호한 대응이 ‘편향 판사’ 논란을 잠재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청법협은 정치단체의 산하에 있었다는 점이 문제 됐던 것으로 우리법연구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