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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법연구회 해체 … 일 ‘청법협’ 사례 주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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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법원이 우리법연구회 문제를 놓고 고심을 계속하고 있다. 연구회를 둘러싼 공방으로 사법부 전체가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 상황이다. 법원 안에서도 “판사의 정치적 중립성도 중요하지만 중립적으로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연구회가 스스로 해체 수순을 밟지 않는 한 개입할 근거도, 방법도 찾기 어렵다는 데 대법원의 고민이 있다.

22일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우리법연구회로 인해 마치 판사들이 편향돼 있는 것처럼 오해를 받게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학술단체로 등록된 연구회가 정치적 활동을 했다는 근거가 없는 이상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다”고 했다. 과거 군(軍)의 ‘하나회’는 정치 군인들의 사조직으로 규정돼 와해됐지만 연구회의 경우 정치 활동을 했다거나 인사 등에서 서로를 끌어주는 사조직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공식 대응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논란을 더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 부장판사는 “연구회 회원들이 반발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일본의 ‘청년법률가협회(청법협)’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일본 법조 전문기자가 펴낸 『최고재판소 이야기』에 따르면 청법협은 진보 성향 판사와 변호사들의 모임으로, 소속된 판사가 당시 전체 판사의 10%(225명)에 육박했다. ‘진보 판결’ 논란 속에 내연하던 청법협 문제에 불을 붙인 것은 1969년 8월 ‘재판 관여 편지’ 사건이었다. 한 지방법원장이 자위대 관련 사건을 맡은 판사에게 편지를 보내 재판에 관여하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청법협 소속인 해당 판사가 이 단체의 동료 판사들에게 이 편지의 사본을 보내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다음 해 초 이시다 가즈토(石田和外) 최고재판소 장관(우리의 대법원장)은 “정치권이 사법부에 개입할 틈을 줘선 안 된다”며 본격 대응에 착수했다. 같은 해 4월 최고재판소는 담화를 통해 “정치적 색채를 띠는 단체에 가입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청법협 소속 판사보를 판사 임용에서 탈락시키는 등 법관들의 청법협 탈퇴를 유도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일본 사법부의 단호한 대응이 ‘편향 판사’ 논란을 잠재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청법협은 정치단체의 산하에 있었다는 점이 문제 됐던 것으로 우리법연구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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