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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문지기 16년, 이운재의 배수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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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축구 대표팀의 수문장 이운재가 스페인 전지훈련에서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를 막는 훈련을 하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그는 이번 남아공 월드컵을 축구 인생의 마지막 기회로 여기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마르베야(스페인)=연합뉴스]

“혹시 저 선수는 이운재(37·수원)가 아닌가요? 그를 직접 보게 되다니.”

핀란드전이 열린 18일(한국시간) 스페인 말라가. 기자에게 한 스페인 축구팬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는 “이운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는 2002년 월드컵 8강전에서 이케르 카시야스(스페인 골키퍼)를 꺾었다. 좋은 승부였다”고 기억했다. 당시 이운재는 우승 후보 스페인의 파상 공세를 120분간 실점 없이 막아낸 뒤 승부차기에서 호아킨의 킥 방향을 정확히 읽어내 한국을 4강에 올려놓았다. 8년이 흘렀지만 축구대표팀 골문 앞에는 여전히 그가 버티고 있다.

◆이운재가 말하는 네 번의 월드컵=A매치 125경기 출전에 108실점. 말 그대로 백전노장이다. 이제는 이마에 주름이 선명하다. 허정무팀 최고령 선수로 막내 김보경(홍익대)과는 16살이나 차이가 난다.

이운재가 처음 월드컵 무대에 나선 것은 1994년 미국 월드컵 독일과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로 활약했던 그는 지나친 감량으로 폐결핵을 앓아 98 프랑스 월드컵은 뛰지 못했다. 병을 이겨내고 다시 대표팀에 발탁된 뒤 2002년에는 32개국 출전 선수 중 가장 많은 시간(687분)을 출전했다. 2006년 독일에서는 사상 첫 원정 월드컵 승리(토고전 2-1)를 지켜냈다.

22일 스페인 마르베야에서 이번 전지훈련의 마지막 일정을 마친 그에게 지난 네 차례 월드컵의 의미를 물었다.

“첫 출전 때는 월드컵이 어떤 건지 몰랐다. 98년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아내를 얻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2002년은 선수 이운재가 도약할 수 있는 계기였다. 2006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고참으로서 팀을 이끌며 좋은 성과를 내고 싶었지만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조금 모자랐다.”

◆“체력 안 되면 대표팀 떠날 것”=풍부한 경험과 안정적인 경기 운영은 이운재만의 장점으로 꼽힌다. 그는 경험이 부족한 대표팀 수비진에서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러나 “체중이 불어 몸이 둔해졌다” “전성기가 지났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9일 요하네스버그(해발 1753m)에서 열린 잠비아전에서 4골을 허용하자 ‘고지대에서는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체력이 약한 이운재로는 불안하다’는 회의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는 담담히 인정했다. “약점으로 지적된 부분도 잘 알고 있다. 이런 우려를 들으면 나도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계속해서 체력이 문제가 된다면 스스로 대표팀을 떠나겠다.”

실제로 이번 전훈 기간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개인 운동을 소화했다. 매일 새벽 해가 뜨기 전부터 김현태 골키퍼 코치와 숙소 주변을 달렸다. 물만 마셔도 체중이 부는 체질이지만 이 같은 노력 끝에 전훈 기간 4㎏을 감량했다.

◆A매치 최다 출전, 새 역사 앞에 서다=이운재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스위스와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센추리 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에 가입했다. 한국 선수로는 차범근(121경기), 홍명보(135경기) 등에 이어 여섯 번째다. 그는 또 다른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홍명보가 보유한 A매치 최다 출전 기록이다. 이운재가 월드컵 본선까지 예정된 평가전에 모두 출전할 경우 남아공에서 대기록을 세울 수도 있다. 그는 “기록을 의식하고 있지는 않다. 아직 남아공에 간다는 보장도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남아공 월드컵이 축구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는 각오로 임할 계획”이라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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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베야(스페인)=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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