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국에서 강국으로] 中. 경제·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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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6일 오후 3시30분쯤 중국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시 타이후(太湖) 제1호 다리. 다리를 떠받치고 있는 너비 34.91m, 높이 6m의 두 교각 사이를 중국제 경비행기 한 대가 쏜살같이 빠져 나갔다.

순간 타이후 주변에 몰려 있던 10만 인파의 함성이 터졌다. 함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경비행기 두 대가 연이어 비좁은 교각 사이를 통과하는 묘기를 펼쳤다. 여섯명의 비행사들이 중국 항공묘기 역사에 새 이정표를 세우는 순간이었다.

비슷한 시간 후난(湖南)성 헝산(衡山)에선 한 중국인이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1천3백89m 외줄타기에 성공, 기네스북 기록을 바꿔 놓았다.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중국인들의 극한 도전이 올해 들어 유난히 많아졌다. 목숨을 걸고 오토바이로 협곡을 건너 뛰는가 하면, 지난 8월엔 베이징(北京)체육대 교수가 너비 1백23㎞인 보하이(渤海)만을 헤엄쳐 건너기도 했다.

모험의 주인공들은 대개 "중국인의 기개를 떨쳤다" 고 소감을 말한다. 그러나 이같은 의례적인 말 뒤엔 중국도 이젠 먹고 살만해졌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이제 모험을 즐길 정도로 생활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국경절 연휴 기간엔 한국 인구보다 1천만명이나 많은 5천5백여만명의 중국인들이 여행을 즐겼다.

관광 수입만도 2백20억위안(약 2조6천5백억원)을 넘었다. '휴일 경제' 라는 신조어가 낯익은 낱말이 된 지 오래다.

여유가 생긴 중국은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다. 지난 8월 22일 베이징시는 장마오(張茅)부시장 지휘로 '시민 영어회화 캠페인' 을 시작했다. 중학교를 마친 사람들은 누구나 영어회화가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같은 영어학습 독려 이면엔 2008년 올림픽을 유치하고 국제 대도시로 거듭 나겠다는 베이징의 야심이 숨어 있다.

'크레이지 잉글리시' 학습법으로 유명한 리양(李陽)은 중국에서 연마한 영어를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에서 가르치는 진풍경을 펼쳤다. 중국관영 TV방송국인 CC-TV는 9번 채널을 신설, 지난달 25일 종일 영어 방송을 시작했다.

세계를 향한 중국의 문도 폭이 넓어지고 있다. 중국인 상대 민박 영업을 허용한 베이징시가 조만간 외국인 민박도 허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아직도 외국인 거주지역을 따로 두고 있는 중국에선 대단한 변화다. 한마디로 중국이 열린 사회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중국 사회 변화를 촉진하는 것은 경제의 꾸준한 성장이다. 제9차 경제.사회 5개년 계획이 실시되기 직전인 1995년 중국 엥겔계수는 56.1이었으나 4년 후인 99년 49.3을 기록했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졌다. 중국 시사지 요망(瞭望)에 따르면 9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올해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8백달러(약 88만원) 정도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그렇게 갈망하던 '부유하진 않지만 먹고 사는 일상 생활에 걱정이 없는' 소강(小康)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1인당 GDP를 2010년엔 2000년의 두배, 중국 공산당 창건 1백주년을 맞는 2021년께는 4천달러로, 중국 건국 1백주년이 되는 2049년엔 8천~1만달러로 올려 '부강.민주.문명화된 사회주의 국가' 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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