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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참석 '순환'의 파나히 감독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순환' 의 자파르 파나히(40)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성장한 감독이다.

데뷔작 '하얀풍선' 으로 제1회 부산영화제에 참석했고 이듬해 다시 '거울' 로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거울' 은 제1회 부산영화제 참석 당시 젊은이들이 넘치는 남포동 거리에 한 중년 여성이 고독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그가 이번에는 세계적인 감독이 돼 부산을 찾았다. 그런 인연이 있어서인지 파나히는 "부산영화제는 젊음이 넘쳐 좋다" 며 "자신에겐 최고의 영화제" 라고 말했다.

9일 오후 관객에게 선을 보인 '순환' 은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다룬 작품. 감옥에서 탈출해 경찰에 쫓기면서도 집에 돌아가려 안감힘을 쓰는 아리수와 마르게스, 가난 때문에 딸을 버리는 어머니 등이 교대로 주인공이 되는 형식을 취하면서 이란 여인의 삶을 갉아먹는 이슬람 사회의 편견을 적나라하게 들추어낸다.

특히 남자와 동행하지 못하면 여관방도 구할 수 없고 버스도 타기 어려운 현실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다. 파나히는 이 영화를 "작은 감옥에서 벗어나 더 큰 감옥으로 옮아간 사람들의 얘기" 라고 정의한다.

파나히 감독은 영화가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5백여명이 참여한 이 자리에서 가무잡잡한 얼굴에 다부져 보이는 파나히 감독은 시종 위트과 여유있는 답변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 작품은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이란에서는 상영금지처분을 받았다. 이 때문에 큰 상을 받고도 심하게 마음 고생을 한 파나히는 관객의 애매한 질문에도 명쾌히 답하다가 영화의 상영 여부에 대한 말이 나오면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어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 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는데" 라며 운을 뗐더니 "과장이나 윤색하기 보다 이란 사회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시나리오로 옮겼을 뿐" 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사회의 큰 변화를 염두에 두기 보다 사소한 모티브 제공만 해도 만족한다" 고 답했다.

그는 또 "이란 뿐 아니라 모든 인간들은 전통의 관습이나 사회 체제의 보수성에 짓눌려 산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단 이란만을 비유한 영화도 아니다" 고 했다.

다음 작품에 대해선 "3년여를 준비한 '순환' 이 이란에서 상영돼야 구상에 들어갈 수 있지 않겠냐" 며 다시 한번 상영금지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테헤란 영화 TV대학을 졸업한 파나히 감독은 '하얀풍선' 으로 95년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으며 '거울' 은 97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부산=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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