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좌 완등한 세계 첫 여성으로 … 4월 안나푸르나에 서겠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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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15일 한라산 백록담 아래 윗세오름. 산악인 오은선(44·블랙야크·사진)은 백록담 남서벽을 올려다보며 연방 탄성을 질렀다. 연이은 폭설과 한파로 남서벽은 카라코람(검은 벽) 히말라야 못지않은 풍광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미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를 13개나 오른 오은선이지만, 겨울 한라산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는 올봄 14좌 레이스의 마지막 도전이 될 안나푸르나(8091m) 등정을 위해 떠난다. 예정대로 성공한다면 그는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밟은 세계 최초의 여성이 된다.

-기분이 어떤가.

“올해 첫 산행인데, 순백의 한라산이 반겨줘 너무 기분이 좋다. 좋은 징조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무슨 일이든 다 잘 될 것 같다.”

-안나푸르나 등반 일정은.

“3월 초 출국해 고소 적응을 위해 6000m급 봉우리를 먼저 오를 생각이다. 4월 초엔 안나푸르나 북면에 베이스 캠프를 차린다. 1차 정상 공격은 4월 말에서 5월 초로 잡고 있다. 등반 루트나 전략은 지난해와 다를 게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먼저 고소 적응을 마치고 들어간다는 것, 눈사태가 잦은 캠프1(약 5400m)에서 캠프2(약 6100m) 사이 운행 횟수를 최소로 줄인다는 것 정도다.”

-지난해 가을 안나푸르나 정상을 앞두고 돌아섰을 때의 심정은.

“당시엔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서 재차, 삼차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그 뒤로 여유가 생겼다. 지난해에 안나푸르나를 성공했으면 반드시 공허감이 밀려왔을 것 같다. 사실 1년에 8000m 봉을 몇 개씩 올랐던 건 최근의 일이고, 2007년까지는 등정 실패도 여러 차례 있었다. 실패 뒤엔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고 믿는다. 올해 그 기회가 올 것 같다.”

-에두르네 파사반(스페인), 겔린데 칼텐부르너(오스트리아) 등 해외 경쟁자도 올해 14좌를 완등할 가능성이 큰데.

“귀한 동료, 스승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있어 내가 히말라야 14좌라는 목표를 세울 수 있었고, 무산소 등반 영역을 접할 수 있었다. 등반 중에도 종종 마주치곤 했는데, 서로 존중하는 사이다.”

지난해 12월 3일 오은선은 공개 석상에서 눈물을 흘렸다. 안나푸르나 등정 보고회 자리였지만, 그해 5월 성공했던 칸첸중가(8586m) 등정에 대해 일부 산악인이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날 한라산 기슭에서 조심스레 그때 심정을 물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난 정상에 올랐다. 셰르파 말만 믿고 내려온 것이 아니다. 내가 밟은 곳이 정상이 아니라면 다시 가겠지만 결단코 정상에 섰다. 내 앞뒤에서 칸첸중가를 올랐던 외국 원정대도 다 인정하는 사실을 왜 일부 국내 산악인이 시비를 거는지 안타깝다.”

등반을 앞두고 가장 필요한 준비를 물었더니, 오은선은 “정신”이라고 잘라 말했다.

“집중은 하지만 욕심내지 않는 것,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일이다. 그럴 때마다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한다.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내가 꿈꿔온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한다. 그 꿈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갈 뿐이다.”  

한라산=김영주 기자, 사진=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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