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들의 역습인가 … 가치주 펀드 “올핸 위너 될 거예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2면

“1년에 10%만 올라도 되는데…, 솔직히 좀 부담스럽네요.”

최근 KT·한국전력의 급등세를 바라보는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에서 비중이 가장 큰 종목들이라 마냥 기쁠 법도 하다. 하지만 단기 급등이 불러올 수 있는 후유증을 생각하면 반갑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수적으로 운용되는 게 가치주 펀드다.

그러다 보니 대형 성장주가 주도하는 장세에선 상대적으로 빛이 바랜다. 지난해에도 대부분의 가치주 펀드 성적이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올해는 가치주 펀드도 눈여겨보라고 권하는 펀드 전문가들이 많다. 장세 전망은 물론 제도 면에서도 가치주 펀드에 유리한 환경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연초이긴 하지만 실제로 가치주 펀드의 수익률이 되살아나는 조짐이다. 새해 벽두부터 지난해 못 오른 종목들이 돌아가며 오르는 이른바 ‘루저(loser)들의 랠리’가 펼쳐진 영향이다. 특히 최근 급등세를 보인 통신·전기가스 등은 가치주 펀드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업종이다. 설정액 1조원이 넘는 ‘한국밸류10년투자’는 1개월 수익률이 4.7%, 연초 이후는 2.89%다. 국내 주식형 펀드의 1개월 평균 수익률이 3.21%, 올 들어서는 마이너스(-0.35%)를 기록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좋은 성적이다. ‘푸르덴셜 밸류포커스’도 1개월 6.67%, 연초 이후 3.11%로 순항 중이다.

코스피지수가 금융위기 이전을 회복한 까닭에 올해 지수상승률은 지난해만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증시의 변동성도 커지고, 종목별로도 주가가 차별화될 것이란 분석도 덧붙는다. 보수적으로 종목을 고르고, 시장의 출렁임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가치주 펀드에 유리한 형세다.

이채원 부사장은 “지난해에는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투자자들이 ‘꿈’을 샀다면, 올해는 현실로 돌아와 ‘싼 것’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라톤’을 운용하는 허남권 신영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장도 “지난해에는 대부분의 주식펀드들이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올해는 어떤 종목을 고르느냐에 따라 펀드 수익률이 크게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부터 본격 적용되는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기업들의 자산 재평가가 늘어나는 것도 가치주 펀드에는 호재라는 분석이다. 현대증권 오온수 펀드 담당 연구원은 “특히 중소형주 중에 숨겨진 자산 가치가 드러나며 기업 가치가 올라가는 곳들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올해부터 공모펀드에도 증권거래세가 부과되지만 가치주 펀드는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을 것으로 보인다. 주식을 자주 팔고 사는 성장형·인덱스형에 비해 한 종목을 사면 상대적으로 오래 보유하는 가치주 펀드의 특성 덕이다.

삼성증권 조완제 펀드 담당 연구원은 “대형 성장형 펀드가 축구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라면 가치형 펀드는 수비형 미드필더”라며 “올해는 공격과 수비에 모두 신경 써야 하는 만큼 가치주 펀드를 적절히 활용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