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이모저모] 서로 "할말 다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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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부처님 말씀에 옷소매만 스쳐도 연분이라는데 우리가 정계에서 이렇게 서로 책임지고 나라 일을 하는 것도 보통 연분이 아니다. 국민을 편하게 하기 위해 나도 노력할테니 李총재도 협력해 달라. "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9일 3시간에 걸친 여야 영수회담의 말미를 이렇게 맺었다.

그러면서 "서로 왕래하고 가족끼리도 식사하자" 는 말까지 했다.

양측은 "두 분이 인간적으로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했다" (朴晙瑩 청와대 대변인), "국민을 대변해 피하지 않고 할 말을 다 했다" (權哲賢 한나라당 대변인)며 만족해했다.

간간이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이 바람에 李총재는 준비해간 '황장엽(黃長燁.전 북한 노동당비서)활용론' 을 꺼내지 않았다" 고 한 측근은 전했다.

◇ 자민련 신경 쓴 金대통령=오전 11시 청와대 본관 백악실 앞에서 이회창(李會昌)총재를 맞는 金대통령은 다른 영수회담 때와 달리 표정이 밝았다고 權대변인은 전했다.

李총재는 회담 때 權대변인이 전해준 봉투를 옆에 놓았다. 11시에 시작된 회담은 당초 예상보다 한시간이 더 걸려 오후 2시에 끝났다.

朴대변인은 "주로 李총재가 묻고 대통령은 답변하는 형식으로 회담이 진행됐다" 고 전했다.

金대통령은 공적자금과 관련, '잘못' 이란 말을 했다고 權대변인은 설명했다.

金대통령은 공적자금 문제와 관련해 "본의 아니게 국민과 야당에 다른 말을 해 미안하다" 며 "대우 처리를 1년 이상 끈 것도 잘못됐다" 고 말했다는 것.

자민련 문제를 둘러싸고 두 사람은 '국민의 뜻' 을 끌어들이며 승강이를 벌였다. 李총재가 "(자민련이 교섭단체가 못된 것은)총선 민의(民意)" 라고 지적하자 金대통령은 "자민련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된 것도 국민의사" 라고 맞받았다.

金대통령은 "과거 유신 이전에는 교섭단체 요건이 10명 이하였다" 면서 "인도만 5.5%일 뿐 세계 모든 나라가 의석의 5%만 갖고 있으면 교섭단체로 인정한다" 고 구체적 사례까지 들었다.

◇ 여야 3당 반응=민주당 박병석 대변인은 "모든 정치현안을 국회에서 해결하는 의회정치 복원의 계기가 돼야 한다" 며 "합의실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 이라고 다짐했다.

한나라당 李총재는 "야당과 국민의 문제의식을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면서 "정국을 대화로 풀어가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고 자평했다.

다만 자민련 변웅전(邊雄田)대변인은 영수회담 정례화와 관련, "우리를 '왕따' 시키려는 모양인데 조그마한 갈등만 생겨도 허물어질 건데 잘 되겠느냐" 며 불만을 표시했다.

최상연.박승희 기자

사진=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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