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판매 첫 토론회 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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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자유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독자들은 싼 가격에 좋은 책을 읽을 권리가 있다. 대형서점들은 영세한 중소서점을 내세워 문제제기를 하지 말고 온라인 서점들과의 경쟁에 정정당당히 응해야 한다" (이강인 예스24 대표).

"자유시장경제 논리를 들먹이며 저자의 창작물인 책을 단순한 공산품으로 취급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출혈을 감수한 온라인 서점들의 경쟁적인 가격인하조치는 '결과적으로 '가격앙등을 초래해 독서인구를 줄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창연 한국서점조합연합회장).

지난 6일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문화관광부가 주최한 '정기간행물 정가판매제에 관한 토론회' 에는 출판계와 온라인.오프라인 서점계.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문화관광부의 '출판 및 인쇄진흥법 제정안' 이 소비자의 주권을 침해하고 자유경제체제를 역행한 위헌적 소지라고 반발하는 온라인 서점 관계자들과, 도서 할인판매는 결과적으로 학문과 지식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처사라는 출판인회의와 오프라인 서점 관계자들의 입장차이가 팽팽히 맞서 한눈에도 합의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문제는 한결같이 '소비자들의 권익보호' 를 외치고 있는 양측이 진정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인터넷 교보문고가 평균 11%의 적자를 기록했다. 물류기반 구축 등의 새로운 투자를 필요로 하는 온라인 서점들의 수지구조를 짐작할 수 있다" (교보문고 김성용 영업이사). "인터넷 교보문고는 1만원 이상의 책에 대해서는 배송료를 받지 않는다.

출판사들이 모여 만든 북토피아도 마일리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할인해주고 있어 결과적으로는 우리보다 높은 비율로 할인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강인 예스24 대표). 양측은 문제의 본질을 따지고 들기 보다는 서로 흠집내기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청중석에서도 간간이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겠다' '이제 그만 좀 해라' 며 상대방 패널의 발표를 가로막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문화관광부가 이날 토론회를 마련한 것은 지난달 입법예고한 '출판 및 인쇄진흥법' 에 대한 논쟁이 날로 가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가 지난달 9일 발표된 출판 및 인쇄진흥법은 모든 간행물은 정가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이를 어기고 할인판매를 한 사업자에게는 5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린다는 내용이다.

문화관광부 홈페이지에는 문화부의 입법예고 내용에 항의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연일 폭발적으로 올려졌고, 그대로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기존 대형 서점과 출판인회측의 직.간접적인 압력 또한 계속됐다.

주무부처로서 출판 및 서점업계의 붕괴위기를 외면할 수도, 지속적인 가격인하를 원하는 네티즌들의 항의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 문화부는 "입법예고는 국민의 의견을 들어 정책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중히 검토해 정부안을 확정할 것" 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정부가 스스로의 뚜렷한 원칙없이 의견수렴이라는 명목아래 소득없는 토론회만 계속 연다면 도서정가제는 결국 '제2의 의약분업' 으로 비화돼 결국 그 피해가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것" 이라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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