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전도 38년 퇴임한 연대어학당 백봉자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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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영어를 배우며 미국.영국에 자연스레 동화되듯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단순한 언어교육이 아니라 그들을 한국 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

38년간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다 지난달 정년 퇴임한 연세대 한국어학당 백봉자(白峰子.61.여)교수의 소회다.

'한국어 전도사' 를 자임하며 지한파(知韓派) 외국인들을 길러낸 그에게 오늘 한글날의 감회는 남다르다.

4천여명의 외국인 제자를 길러낸 그에게 정년퇴임은 또다른 인생의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구로다 가쓰히로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 후지모토 도지카스 일본 NHK방송 PD, 연세대 설립자 언더우드의 손자인 연세대 영문과 원한광(元漢光)교수 등이 그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을 이해하게 됐다.

그는 연세대 국문과 3학년이던 1960년 학과에서 실시한 외국인용 한국어 교재 개발을 위한 어휘 빈도수 조사연구에 참여하면서 한국어 교육의 길을 걷게 됐다.

"변변한 교재나 검증받은 교수법도 없었죠. 초기에는 나보다 나이많은 외국학생들이 '너무 못가르친다' 며 항의하는 망신까지 당했지요." 이후 그는 낮에는 외국인 학생을 가르치고, 밤에는 교육방법을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93년 그가 주도해 만든 외국인용 교재 '한국어' 는 한국어 교육의 교과서로 꼽힌다. 이 책은 영.일.중.노어로 번역돼 세계 각지의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38년간의 한국어 교육에서 가장 힘든 것은 '한국 사람이 한국말 가르치는 것만큼 쉬운 게 어디 있느냐' 는 일반인의 생각이었다. 이런 사고가 외국인 상대 한국어 교사의 전문성 향상과 한국어 세계화의 큰 장애 요인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일선 교육현장에서 은퇴한 뒤 후진 양성에 애쓸 생각이다. 국제한국어교육학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미 국문과 교수 등이 만든 한국어 세계화추진위원회를 통해 주말마다 교사연수 강의를 나가고 있다.

"이웃 일본은 자국어의 국제 보급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어요. 선진국들은 언어에 대한 투자가 곧 국력신장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요. "

그는 한국어 보급과 국력의 역학 관계에 무관심한 우리 정부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잊지 않았다. 또 인터넷 시대에 한국어의 세계화가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우상균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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