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은 돈 몽땅 밝히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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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 정가에서 뭉칫돈인지 검은 돈인지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공방이 참으로 꼴불견이다.

검찰이 고속철 로비자금 행방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시절 여당인 신한국당 사무총장의 주변인물 계좌로 또다른 뭉칫돈이 흘러들어간 게 드러났는데 아마도 그게 안기부의 자금인듯 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른 정치적 사건에 대해선 소문만 가지고 수사할 수 없다던 검찰이 이번엔 그 소문을 확인하겠노라고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자 이번엔 YS측에서 만약 김대중(金大中)대통령측이 이렇게 나오면 '중대 결심' 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도대체 뭉칫돈이 무슨 돈인지, 누구의 손이 깨끗한지 국민으로선 알 도리가 없다. 오가는 공방으로 봐서는 정치권 핵심들이 검은 돈에 결부돼 있고 서로 그것을 터뜨리면 공멸(共滅)하는 핵폭탄처럼 공갈수단으로 삼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뭉칫돈이 안기부 자금인지는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만약 국가예산이 멋대로 한 정당의 선거자금으로 들어갔다면 공금유용이며 불법선거행위다. 이런 식으로 예산을 유용하고 선거에 개입한다면 그런 정부는 불법적인 권력집단밖에 무엇이 되겠는가.

또 하나는 YS측의 주장이다. 지난해 金전대통령은 본지 인터뷰에서 "보고가 들어와요… 다 알지" 하면서 DJ의 비자금 존재 가능성을 흘렸다.

이번에 중대 결심을 하겠다는 것이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비자금이라는 게 불법적인 자금인데 그 존재를 안다면 공개하면 그만이지 그것을 위협수단으로 삼는 자세도 떳떳하지 못하다.

결국 우리 정치권은 서로 남의 약점을 잡고 그것을 자신의 비리를 감추는 수단으로 삼아 서로 공갈치다 '큰 정치' '대타협' 이라며 어물쩍 넘어왔던 게 아닌가.

안기부 자금 의혹설도 철저하게 밝히고 YS측도 할 말이 있으면 감추지 말자. 이젠 이런 정치권의 부정을 그냥 넘길 때는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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