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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위원장 “우리법연구회,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념 사조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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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판사 출신인 이주영 한나라당 사법제도개선특위 위원장은 20일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법원 내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의 해체를 주장했다. 군부정권 시절 군내 최대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념적인 판사들의 모임으로, 법원 내 파벌을 만들고 ‘편향 판결’을 조장한다는 주장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우리법연구회를 사실상 묵인하는 바람에 최근 정치적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 여권의 인식이다. 이 위원장은 이날 그 근거로 지난해 말까지 이 조직의 회장을 지낸 문형배 부산지법 부장판사의 블로그 등을 인용했다. 그는 “문 부장의 글을 보면 우리법연구회가 자신들과 성향이 다른 법관을 구분해 주류, 비주류 형태로 세력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개인숭배로 볼 수 있는 이념지향 단체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사법적 이슈 발생 시 지향점을 갖고 행동한다는 내용도 있다”고 말했다. 어느 나라에도 이 같은 이념지향의 법관단체 사조직은 없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과거 일본에 이와 유사한 청년법률가협회가 있었으나 사회문제가 되자 일본 최고재판소장이 단체 소속 법관 징계, 형사재판 및 법관 재임용 배제 등을 통해 결국 해체시켰다”고 설명했다.

◆문 전 회장이 블로그에 올린 글=문 전 회장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우리법연구회의 다수 회원이 지지하는 대법원장이 취임하셨고, 우리 연구회 출신 변호사가 대법관에 제청됐다”며 “우리법연구회는 대법원장을 지지하고 주류의 일원으로 편입된 이상 기존 주류의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법연구회를 제안한 박시환(현 대법관) 정신, 한기택(전 대전고법 부장판사, 2005년 작고) 정신, 늘푸른 당신과 함께 앞으로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문형배 부장판사

◆정치적 성향 갖고 출범=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제2차 사법파동’을 계기로 출범했다. 제2차 사법파동은 전국의 소장판사 430여 명이 노태우 정권의 대법원장 유임 움직임에 반발해 서명운동을 벌인 사건이다. 이로 인해 전두환 정권 때인 86년 취임한 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이 물러나고 이일규 대법원장이 취임했다.

우리법연구회의 태동에 대해 창립 회원인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은 2002년 연구회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1988년 6월 10일 밤 9시쯤 사법연수원 13기 동기생인 이광범·유남석·한기택 판사 등이 나를 서교호텔 뒤 맥줏집으로 불러냈다. 이들은 서울법대 학보(Fides) 편집실을 중심으로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당시 김용철 대법원장의 유임이 유력한 상황이었는데 우리는 성명을 내자는 데 합의했다. 1988년의 서명운동은 향후 사법조직 내 민주화 운동 세력이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해 8월 우리법연구회의 모체가 탄생했다.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다.” 이들은 이듬해 우리법연구회라는 명칭으로 정식 출범했다. 김 전 실장은 또 “사법연수원 13기가 나오면서 비록 일부나마 소위 운동권이 사법조직에 편입됐고, 그런 사람들이 1988년 6월 15일의 서명운동을 기획하고 주도했던 것이다”며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우리법연구회가 애초부터 특정 정치성향을 갖고 출범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김 전 비서실장은 이용훈 대법원장과 함께 변호사 생활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대법원장을 발탁한 직후 비서실장이 됐다.


우리법연구회라는 명칭은 박시환 현 대법관이 작명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였던 2003년 서울지법 부장판사였던 그는 서열 위주의 대법관 인선에 반대하며 사표를 냈다. 그리고 2년 뒤 자신이 주장한 대로 서열을 훌쩍 뛰어넘어 대법관에 임명됐다. 회원이었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박범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도 노무현 정부 때 중용됐다.

용산사건 수사기록 공개를 결정해 논란을 불러온 이광범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을 지내며 법원 내 정책 방향을 총괄했다.

현재 회원이 130여 명인 우리법연구회는 스스로 ‘순수한 학술단체’라고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 내 연구 모임인 헌법연구회·노동법연구회와는 달리 어떤 연구를 하는지 목적이 명확하지 않아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효식·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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