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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씨 마를라’ 16억어치 정액 구제역 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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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충남 서산시 운산면의 한우개량사업소에 비상이 걸렸다. 경기 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구제역 때문이다. 한우개량사업소는 농협중앙회가 1982년 설립한 국내 유일의 한우 개량 기관이다. 유전적으로 우량한 한우를 만들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한우개량사업소의 씨 수소 50마리는 해마다 정액 200만 ‘스트로(straw)’를 생산해 공급하고 있다. 전국 한우 암소의 98%인 130여만 마리가 이곳에서 정자를 받아 수태된다.

한우의 메카인 이곳 인근에 구제역이 발생하면 국내 한우 생산에 막대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한우개량사업소 반경 500m 이내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 한우개량사업소 내 소와 정액은 모두 살처분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우선 사업소 측은 18일 수소 정액을 옮겼다. 한우개량사업소 내 100㎡ 규모의 ‘씨 수소 정액 보관창고’에는 원통형 액화 질소 탱크(높이 1m20㎝, 직경 1m) 30개가 놓여 있다. 탱크 안 액화질소는 영하 196도를 유지한다. 탱크 안에는 볼펜 심 크기의 플라스틱 막대가 촘촘히 꽂혀 있다. 스트로라 불리는 이 막대에는 씨 수소 정액 0.5㏄씩이 들어 있다. 스트로 한 개당 6000~8000원에 공급된다. 암소 한 마리를 수정시킬 수 있는 분량이다. 액화질소 탱크 한 개에는 스트로를 최대 3만5000여 개까지 담을 수 있다.

직원들은 원통형 탱크 15개를 꺼내 특수차량에 싣고 대전 인근 보관창고로 옮겼다. 탱크 안에는 모두 22만 스트로의 정액이 들어 있었다. 보관 중인 정액 44만 스트로 중 절반이다. 이날 작업은 한우개량사업소에서 10여㎞쯤 떨어진 서산시 음암면 한 젖소 농가에서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됨에 따라 취해진 조치였다. 최종천 주임은 “의심 젖소가 음성으로 밝혀지긴 했으나 혹시 모를 구제역으로부터 씨 수소 정액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대피시켰다”고 말했다.

한우개량사업소 측이 보관 중인 정액을 옮긴 것은 2002년 충남 홍성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8년 만이다. 특히 충남 등 인근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 현재 사육 중인 씨 수소 50마리를 다른 곳으로 대피시킬 예정이다. 현재 사업소 측은 주요 출입구 11곳에 방역시설을 설치했다. 소독을 위해 하루 100㎏ 이상의 생석회를 뿌리고 있다. 내부 출입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씨 수소는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쳐 선발된다. 해마다 전국에서 생후 6개월 된 수송아지 2만 마리 가운데 400마리를 고른다. 선발 기준은 혈통과 외모가 우수하고 질병이 없어야 한다. 선발된 400마리를 6개월간 길러 발육이 우수한 40마리만 추려낸다. 씨 수소 한 마리를 키우는 데는 20억원이 든다. 씨 수소 한 마리는 2년6개월간 스트로 12만여 개 분량의 정액을 생산하고 도태된다.

원유석 한우개량사업소장은 “사업소 인근 10㎞ 이내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 한우개량사업소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다”며 “80여 명의 직원이 비상 근무 중”이라고 말했다.

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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