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원전 수주, 그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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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즘 채용시장의 블루칩은 한국수력원자력이다. 인터넷에는 과거 입사시험 족보가 난무하고 눈치 싸움이 한창이다. 다음 주부터 뽑는 신입사원은 지난해보다 두 배 많은 300명. 한수원은 앞으로 1000명의 인턴과 3000명의 원자력 전문 인력을 채용하는 3년간의 청사진도 첨부했다. 390명의 인턴 사원 중 10명만 정규직으로 뽑았던 지난해 추석과는 딴판이다.

신고리 1~4호기 원전 주변은 언제나 살벌했다. ‘핵은 죽음’에서 ‘30년 일한 원전, 이젠 떠나라’까지, 섬뜩한 플래카드들로 도배됐다. 이런 풍경은 이제 싹 자취를 감췄다. 대신 세계에서 가장 큰 원전 건설 현장을 찾는 외국 시찰단들로 붐빈다. 한국형 원전이 순차적으로 세워지는 이곳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체 원전 건설 과정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전국에서 원자력공학과가 개설된 곳은 모두 6개 대학뿐이다. 스스로 30%씩 모집정원을 줄일 만큼 원자력공학과는 홀대받았다. 그런 학과에 갑자기 대학들이 탐을 내기 시작했다. 시장이 변하면 대학들도 움직인다. 박주호 교육부 대학지원과장은 “대학이 원자력 관련 학과를 희망하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적극 지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이후 숨가쁘게 변하는 모습들이다. 3주 동안 눈앞에 거대 산업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요르단에서, 터키에서, 미국에서 잇따라 희망적인 뉴스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번 수주전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뛰어난 개인기와 골 결정력은 정말 눈부셨다. “그곳 왕실 경비병력을 우리 특수부대가 훈련시키고 경호 노하우도 완벽하게 전수하라.”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며 감동을 주었다. UAE 왕세자도 그 답례로 기독교를 믿는 이 대통령을 배려해 이번 계약을 ‘알라’ 대신 ‘신(God)의 뜻’이라고 표현했다. 완벽한 협상이었다.

그러나 한국 원전의 진짜 경쟁력을 살피려면 그 역사를 더듬어가야 한다. 최대 분수령은 1986년이었다. 그해 기록적으로 낮은 국제 석탄가격은 원전의 경제성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4월에는 사상 최악의 체르노빌 원전 붕괴사고가 터졌다. 그때 한국은 그 거친 역류를 정면으로 거슬러 오르는 결단을 내렸다. 86년 6월 미국 컴버스천엔지니어링사와 공동으로 한국형 원자로 개발에 착수한 것이다.

그동안 국내 연구진이 겪었을 고생은 짐작이 가고 남는다. 그러나 원자력 주역들은 말을 아낀다. “기약 없이 미국의 외딴 섬에 건너갔지요”라고 꺼내다 얼른 “다 지나간 이야기”라며 말을 끊는다. 다만 공통된 증언은 “제일 큰 스트레스는 기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특히 90~95년이 가장 어려웠다. 옷을 벗고 나간 동료도 적지 않았다. “그때 국정감사 단골 소재가 원자력이었다. 참기 어려울 만큼 무진장 매를 맞았다” “환경단체들의 손가락질도 정말 섭섭했다”…. 기껏 원전 수출의 밥상까지 다 차려놓은 이들은 다시 뒷전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 오래된 습성인 모양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칼 마르크스와 흡사한 경로를 따라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생산과 노동의 세계화도 일자리 부족을 낳는다.” 그러나 그가 마르크스와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은 ‘긍정의 힘’이다. 세계 자본주의 역사를 돌아보면 위기 때마다 어김없이 새로운 거대 산업이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다. 산업혁명, 철도, 전기·화학, 자동차,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정보통신(IT) 혁명이 차례로 자본주의를 구해냈다. 리프킨은 이렇게 말한다. “화석 연료에서 신에너지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

우리 원전산업이 어디까지 뻗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거대한 원전 산업이 ‘청년 백수’ ‘취업 빙하기’를 푸는 해법이 되기를 기대한다. 세종시 진통 속에서 원전 수출 신화는 더욱 돋보인다. 우리는 너무 오래 연구진들의 땀과 눈물은 잊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 긍정의 힘에 대한 믿음을 되살려줘 고맙다.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