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투자 줄줄이 '반토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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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올 들어 증시 침체국면이 심화하면서 펀드 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직접투자에 비해 안정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던 펀드가입이 위험투자로 전락한 것이다.

지난 1월 25일 설정된 한빛투신운용의 한 펀드는 지난 9월말 현재 설정액 1백50억원 가운데 73.5%인 1백10억원이 사라져버렸다. 원금이 반토막 이상 난 펀드도 수두룩하다.

주식편입 비중이 60% 이상인 주식형 펀드는 현재 모두 7백2개로 연초 이후 평균 33.76%의 손실률을 기록하고 있다. 설정액 16조6천1백41억원 가운데 올 들어서만 날아간 돈이 5조6천억원에 이른다는 얘기다.

주식편입 비중이 작은 펀드와 채권편입 비중이 큰 채권형 펀드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펀드가 난립하면서 운용이 과학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증시가 하락국면에 빠지자 손도 못쓰고 수익률이 폭락하는 것이다.

3일 투자신탁협회와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나라별 비교가 가능한 지난해 9월 현재 우리나라의 펀드 수는 1만1천3백26개로 세계 1위였다.

그러나 펀드당 자산 규모는 1백96억원으로 미국의 2%, 홍콩의 9.6%에 불과할 정도로 영세하다.

증시가 활황세에 있을 때 '팔고 보자' 는 투신사의 수탁고 경쟁이 소규모 펀드를 남발한 것이다. J투신운용의 현직 주식운용본부장은 "이렇게 펀드 수가 많으니 펀드매니저들은 종목을 분석할 겨를도 없이 온종일 단말기를 쳐다보면서 단기 실적 올리기에 급급하다" 고 털어놨다.

펀드매니저들의 재량권이 너무 크고, 펀드가 투명하지 않게 운용되는 것도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은 "상품약관에 주식편입 비율이 20~90%로 광범위하게 설정된 펀드가 많아 위험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으며, 올해와 같이 주식시장이 출렁일 경우 고객 돈은 손실위험에 그대로 노출되게 마련" 이라고 말했다.

그는 "펀드 수를 줄이고 투명하고 과학적인 펀드운용으로 고객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고 강조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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