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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밤 지새운 '아침이슬'처럼…김민기 다시 웃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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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올 가을은 김민기(53·학전 대표)의 계절인가보다. ‘아침 이슬’로 대표되는 70~80년대 시대 정신의 상징이었던 김민기를 재조명하는 작업물이 이달 들어 쏟아지고 있다. 그의 노래를 모두 묶은 패키지『past life or KIM MIN’GI』와 1979년 카세트테이프로만 내놨던 노래굿 『공장의 불빛』 리메이크 앨범이 동시에 발매된다. 김민기를 뿌리삼아 태동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도 결성 20주년을 맞아 2·3집을 재발매했다.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는 김민기의 음악과 인생을 총결산한 『김민기』(한울)라는 책을 엮어냈으니 과연 ‘김민기 시대’라 할 만하다.

70년대 서울엔 '도깨비'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김민기와 김영세(54)가 그들이다. 김영세는 '아이리버'MP3 플레이어, '애니콜'휴대전화 상당수를 디자인한 '이노디자인'대표.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다. 고교(경기고) 동기인 이들은 대학(서울대 미대) 시절 '도비두(도깨비 두 마리)'라는 듀엣으로 활동했다. 이후 김민기는 미술을 그만두고 음악인이자 운동가로 활동하다 뮤지컬 연출가로, 김영세는 산업디자이너로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이번 패키지 디자인을 김영세 대표가 맡으면서 둘은 30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췄다. 김민기는 얼마 전 친구 김영세를 만나 "우리 아이가 '김영세 아저씨랑 조영남 아저씨 등 아빠 친구들은 TV '성공시대'에 나오던데 아빠는 언제 성공하느냐'고 묻더라"며 농을 건넸다.

요즘 젊은 층에게 김민기는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번안.연출가로 더 유명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의 이름은 시대정신 자체였다. 71년 LP로 발매된 김민기의 데뷔앨범 '김민기'는 출시 후 곧바로 판매금지됐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은 "노래 자체의 힘과 음악적 울림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불길처럼 퍼져나갔다.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의 시대를 열기도 한 역사적인 앨범"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김민기는 '아침이슬''친구''상록수''늙은 군인의 노래''작은 연못' 등의 주옥같은 노래를 발표했지만 하나같이 금지곡 목록에 올랐다. '긴'자(아침이슬의 첫 가사)만 불러도 경찰에 잡혀가던 시절이었다.

시대가 변한 뒤 양희은의 노래로는 쉽게 들을 수 있었지만 김민기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었다. 직접 노래부르길 꺼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91년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열면서 자금 마련을 위해 노래했다. 그걸 녹음해 태어난 게 '김민기 1.2.3.4' 전집.

'past life or KIM MIN'GI'에는 김민기 전집 복각 CD 4장, 어린이용 뮤지컬로 만들기 위해 작업했던 '아빠얼굴 예쁘네요''연이의 일기' 복각 CD 1장, '김민기'복각 CD 1장 등 모두 6장의 CD가 들어있다. 아침이슬의 독일어 버전, 자신의 앨범에 담지 못한 '밤뱃놀이''눈길''아침' 등의 노래도 넣었다. 김민기에 대한 각종 평론과 연보, 노래 가사를 한국어.영어.일어 3개국어로 실어놓은 책자도 포함됐다.

김영세 대표는 "껍데기는 LP처럼 보이지만 내용물은 CD가 되도록 디자인했다. 김민기의 음악 처럼 패키지도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의미를 담아야한다고 생각해서다"라고 말했다.

'공장의 불빛'은 78년 몰래 녹음해 카세트테이프로 배포한 음반이다. 하나 하나의 노래로 나뉘기보다는 테이프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극이 완성되는 오페라 형식이다. 검열을 피해 녹음한 불법 음반의 효시이기도 하다. 대중음악계의 '천재 소년'이라 불리는 정재일(22)이 그 앨범을 리메이크한 CD와 원래 앨범 복각 CD가 묶여 출시된다. 김민기의 표현대로라면 "건방지게 카세트테이프로만 덜렁 내놓고 나 몰라라 했던" 공장의 불빛이 두 가지 맛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김민기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여기저기 모두 해야하는 게 싫어서"라고 말했다. 최근 그는 사석에서 기자에게 "요즘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작업은 그림 그리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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