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대출담당 김과장, 모텔엔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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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이 별로 없네. 손님이 뜸한 모양이야."

지난 4일 경기도 하남의 한 야산 중턱. 근처 A은행 지점의 대출 담당인 김모 과장이 아래편에 자리잡은 한 모텔의 뒷마당을 유심히 지켜보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은행에서 6000만원의 담보대출을 받은 이 업소는 연초만 해도 하루 100여장이 넘는 수건을 내걸었으나 요즘엔 60여장으로 줄었다.

'수건 세기'는 숙박업소 대출을 많이 취급해본 김 과장이 찾아낸 사후관리 기법. 김 과장도 처음엔 업소를 직접 찾아가 물어봤지만 업주들이 열이면 열 모두 '장사가 잘 된다'고 대답해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모텔 손님과 수건 사용량은 대체로 비례한다는 데 착안했다. "빨랫줄에 걸린 수건을 세어보면 영업이 잘 되는지 금방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게 김 과장의 설명이다.

최근 음식.숙박 업소 등 이른바 소호 사업자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부실 조짐을 일찍 파악하는 게 은행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이에 따라 대출 담당 은행원들의 '부실 조기 진단' 아이디어가 백출하고 있다. 자신만의 업종별 '체감 지표'를 개발하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상환 능력을 점검할 수 있는 체크 포인트를 만들기도 한다.

숙박업소의 경우 수건이 아예 안 걸리면 오히려 청신호다. 문을 닫은 게 아닌 이상 직접 빨지 않고 세탁업자에게 맡길 만큼 장사가 잘 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배달하는 야쿠르트 개수도 숙박업소의 영업상황을 진단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음식업종을 진단하는 데는 품을 더 들여야 한다. 음식점 앞에서 점심이나 저녁시간에 드나드는 손님수를 세는 건 기본이다. 비슷한 음식을 파는 주변 업소에서 경쟁업소의 영업 상황을 듣는 방법도 있다. 피자.치킨 등 프랜차이즈 업종은 배달 나가는 오토바이 뒤에 실린 상자 수를 세면 된다.

소호 못지 않게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는 내수업종 중소기업의 상환능력을 알아보는 데는 더 고도의 기법이 동원된다.

B은행의 기업대출 담당인 신모 과장은 일단 대출받은 업체를 방문해 가동 상황을 눈으로 본다. 그 다음엔 근처의 한국전력 지점으로 향한다. 해당 업체가 낸 월별 전기요금 추이를 보기 위해서다. 신 과장은 "일부 중소기업은 자재나 원료를 빌려다 쌓아놓거나 일당을 받는 직원을 불러다 생산이 활발한 것처럼 꾸미는 경우가 있다"며 "전기요금은 공장 가동률과 정확히 비례하기 때문에 속을 염려가 없다"고 말했다.

한 국책은행의 시설자금 담당 강모 부부장은 정기적으로 대출받은 기업체 사장의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본다. 가족과 함께 살다가 따로 주소를 둔 사장이 있으면 일단 중점관리 대상에 올린다. 이런 경우 자금이나 매출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15년 간의 기업대출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다. 부도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재산을 가족 명의로 돌려두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출받은 업체가 공장을 제대로 짓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는 레미콘 업체의 송장이 중요한 체크 포인트다. 다른 자재는 현장에 쌓아둔 뒤 다시 반출해도 알 길이 없지만 레미콘은 바로 쓰지 않으면 굳기 때문에 공사 진척도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기초공사가 진행 중일 경우 파일을 박는 전문 건설업체의 일일작업기록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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