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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NGO 둘러보니…] "NGO, 국가 의제 주도 60년대 끝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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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9.11 테러 이후 변한 미국 사회는 한국의 NGO들에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바른사회시민회의 등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보수 NGO 13개 단체의 대표들은 중앙일보 시민사회연구소의 주관(삼성생명 후원)으로 12일간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시를 방문, 주요 시민단체들과 정치관계자.방송국 등을 두루 방문했다. NGO 방미단 중 4개 단체의 대표들을 초청, 좌담회를 열었다.

▶ 조현옥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 윤창현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 이학영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사진 오른쪽부터)이 미국 NGO들의 정치참여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참석자>

▶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

▶ 조현옥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
한신대 학술원 연구교수

▶ 윤창현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
명지대 교수(무역학과)

▶ 이학영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 사회=이창호
본사 시민사회연구소 전문위원

▶ 이창호(사회)=먼저 현장에서 미국사회를 보고 느낀 점을 말씀해 주시지요.

▶ 이학영=오랜만에 미국에 가 보았는데 매우 심란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미국사회가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보며 한국을 포함해 국제사회에 희망이 있을까 걱정이 컸습니다. 미국사회 내부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 윤창현=저는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유학생으로 6년이나 살았는데 그때와 상황이 너무나 바뀐 것을 보았습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에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 등장하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미 정부가 100억달러(약 12조원)를 들여 앞으로 미국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의 위치 동향을 감시하는 US Visit (미국 방문)란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움까지 느꼈습니다.

▶ 박병옥=저는 그것을 미국이 현재 전쟁 중, 즉 전시체제라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2000년도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없었던 방벽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습니다. 미국은 현재 겉으론 양극화, 분열되고 있는 듯하나 심연에는 하나의 보수화 흐름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미국 밖의 국가, 특히 우리로선 그것이 더 두렵게 느껴지는 대목일 것입니다.

▶ 이창=미국 NGO들의 대선 참여 문제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 윤=대선 쟁점이 이라크 전쟁.테러 문제 등에 국한돼 있어 다른 국내 이슈, 이를테면 경제.인권.환경.여성 등과 같은 이슈들은 끼일 틈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때문에 환경.여성단체 등이 대선을 호기로 잡아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는 한계를 느끼는 듯했습니다. 일부 평화.반전 단체들의 활동 정도만 부각되는 상황입니다.

▶ 박=그것은 미국사회가 표면적이지만 양극화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론이 양극화된 상황에선 시민단체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반 NGO들이 대선을 맞아 정책 의제를 설정하기 전에 이미 정치적 편가름에 함몰돼 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 이=한국 NGO들의 정치 참여와 미국 NGO들의 그것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인 것도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시민단체들을 망라해 정치개혁 등 큰 주제에 매달렸지만 미국의 NGO들은 주로 분야별 정책영역에서만 활동하고 있지요.

▶ 조=미국에서 NGO들이 국가 의제를 끌어가는 것은 이미 60년대 반전.인권운동 때 끝난 게 아닐까요. 그후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미국의 시민단체들은 하나로 뭉쳐 국가 전체적 추동력을 행사하기보다 각기 분야별 정책이슈에 매달려 왔습니다. 이번에 방문한 여성정치단체 '에밀리 리스트'만 해도 낙태지지 (pro-choice) 여성후보들을 당선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치활동을 펴지만 개별활동인 탓에 우리보다 영향력이 작다고 느껴졌습니다.

▶ 윤=사실 미국에는 크고 작은 지역봉사단체까지 160만개가 있다는데 이젠 그들 단체가 하나로 뭉쳐 어떤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어려운 얘기지요. NGO들이 단일 정책중심으로 간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 역시 배워야 할 일일 것입니다.

▶ 이창=미국 NGO들이 스스로 정치활동에 한계를 두는 일은 없었습니까.

▶ 윤=그렇습니다. 미국에선 연방국세법으로 기부자 면세는 되지만 일체의 정치 참여는 금하는 501(C)(3)조항 단체와 면세는 안 되지만 정치활동을 가능케 하는 501(C)(4)조항 단체들을 명확히 구분합니다. 따라서 면세혜택을 받는 수많은 비영리단체는 스스로 정치활동을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필요할 경우 산하 혹은 병렬단체로 (C)(4) 단체를 별도로 설립해 정치활동 통로로 이용하고 있더군요. 그들 (C)(4) 단체들을 정치행동위원회(PAC)라고 하는데 아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 박=미국 시민단체들은 그처럼 정치활동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점에서 분명한 법적.제도적 구분이 있고 단체 스스로도 그 구분을 체득하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아시다시피 불명확한 점이 많습니다. 서비스 활동도 하고, 정치 참여도 하는 뒤범벅 상태지요. 따라서 장차 미국처럼 확실한 법적 구분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점에서 비록 공익 사업비라고는 해도 시민단체들에 정부가 재정을 직접 지원하는 현행 방식에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 조=미국과 우리의 상황을 같은 수준에서 볼 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도 기부금이 활성화되고 정치가 안정된다면 NGO들의 정치 참여를 단체 자체로 구분하는 미국식 모델이 한 좋은 사례가 될 것입니다.

▶ 이창=더 많은 좋은 얘기를 나눌 수 있으나 시간 제한으로 이상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이창호 전문위원 <changho@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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