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上. 넘쳐나는 마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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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히로뽕→48시간, 엑스터시(일명 도리도리)→48시간, 대용 마약 염산날부핀(누바인)→20분, 중국산 마약 분불납명편 2종→10분, 대마→즉석... 이들 마약류를 손에 넣는데 걸린 시간들이다.

본지 취재팀은 30대 초반의 평범한 회사원으로 철저히 신분을 감췄다. 그럼에도 단 3일만에 국내에 나돈다는 거의 모든 종류의 마약류를 구했거나, 구입할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돈만 오가면 됐을 뿐 그 누구도 신분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특히 가장 비밀스럽게 거래된다는 히로뽕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일반인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는 수사기관의 장담과 달리 구입 가능한 루트가 이틀만에 확보됐다.

본지 취재팀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한국의 마약 상황은 이미 '적색 경보' 그 자체였다.

◇ '히로뽕' 까지 쉽게 구해진다= "삐리리리릭... " 9월 13일 오후 10시쯤 취재 기자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취재팀은 "세시간 후 만나자" 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은 남자가 기다리던 마약 판매상인 것을 직감했다.

취재팀은 친구의 소개로 이틀 전 함께 찾아간 서울 근교 단란주점 마담에게 마약 판매상과의 연락을 부탁했었다.

이후 세번이나 장소를 바꾼 뒤인 오전 1시쯤에야 인천시 남동구의 한 모텔에서 그와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취재팀은 점퍼 차림으로 나타난 40대 초반의 이 마약 판매상이 히로뽕을 갖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 구매 직전 기자임을 밝혔다.

"조직적으로 유통되는 히로뽕은 다른 마약과는 달리 매매를 하면 취재를 위해서라 해도 수사가 불가피하다" 는 대검 마약과장의 만류 때문이었다.

그후 취재팀이 판매상을 설득, 철저한 비밀보장을 약속 받은 뒤 그가 털어놓은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지난해 보따리상을 통해 들어온 중국산 마약이 엄청나지만 대부분 소비됐다" 며 " '프리패스(free pass)' 를 공언한 인천국제공항이 개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고 말했다. "마약 장사꾼들은 세관 공무원이나 마약견의 움직임 정도는 훤히 꿰고 있다" 는 얘기도 덧붙였다.

부산 시내 중심가의 한 단란주점에서 알게 된 30대 후반의 마담 L씨. 9월 21일 취재팀이 "화끈한 것 없을까..." 라며 운을 떼자 "몇다리 걸치면 술(히로뽕의 은어)을 원하는 만큼 구해줄 수 있다" 고 자신했다.

그는 "지난 해에 비해 20% 이상 가격이 내린 상태" 라며 "덤핑 가격으로 인해 얼마 전에는 공급이 갑자기 중단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고 말했다.

취재팀은 또 히로뽕이 비밀리에 거래된다는 소문을 듣고 과천 경마장에 이틀간 잠복,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로부터 " '끈끈이(히로뽕의 은어)' 를 구해주겠다" 는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취재팀을 의심한 듯 전화만 두번 걸어온 뒤 다음 날 약속 장소로 정한 경마장역 주변 커피숍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인터넷엔 마약이 넘친다=취재팀은 외국의 유명 검색엔진을 이용, 마약 사이트에 간단히 접근했다.

2~3일 사이 확보한 인터넷 마약거래 사이트 주소만 20여개. 전세계의 마약 복용자들이 모여 만든 마약 동호회 사이트에선 엑스터시 등 신종 마약의 제조법까지 공공연하게 떠 있는 상태였다.

취재팀은 'www.ubixx.com' 'www.ranxxxxxx.com' 등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운영되는 3개 사이트에 엑스터시.대마초 씨를 주문했다.

두곳은 카드 결제로, 나머지 한 곳은 요구대로 편지 봉투에 50달러를 넣어 보냈다. 나머지 사이트들엔 "한국에선 불법인 마약류를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 며 메일을 보냈고, 1백여개가 넘는 전 세계의 마약 동호회 사이트에도 글을 띄웠다.

이틀 뒤 취재팀의 노트북엔 e-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문한 사이트에선 "물건을 보냈으며, 답장도 하지 마라. 당신의 모든 정보는 곧 삭제된다" 는 메일이 날아왔다.

상당수의 사이트 운영자는 "비밀스러운 포장이 가능하다" 고 답했다. 자신을 Toddy라고 밝힌 한 미국인 마약동호회원은 "회원 중엔 한국인도 상당수 있다" 며 "테크노바 등에서 비밀리에 열리는 '그들만의 파티' 에 찾아가면 된다" 고 친절히 조언했다.

◇ 길거리에서 살 수 있는 대용(代用)마약=9월 15일 오전 1시쯤 인천의 유흥업소 밀집구역인 간석 오거리 뒷골목.

취객을 가장한 본지 취재팀 두명이 1만원권 지폐 한뭉치를 들고 30분째 주변을 배회하자 20대 초반의 한 남자가 "좋은 게 있다" 며 노골적으로 따라 붙었다.

10만원을 내고 건네 받은 건 염산날부핀 앰플 세개. 최근 인천.수원 등 수도권 일대에 유행처럼 나돌고 있다는 '대용 마약' 의 실체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날부핀은 진통제로 쓰이는 의약품이지만 환각 성분이 강해 공급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으며, 최근 히로뽕 대용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취재팀은 서울 영등포의 유흥가에서도 호객꾼을 통해 날부핀을 개당 1만5천원에 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혀 성분을 알 수 없는 가짜 염산 날부핀까지 발견돼 검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인천지검 관계자는 "유흥업소 종사자의 60% 이상이 날부핀을 맞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 말했다.

취재팀은 서울 영등포.신촌 일대의 일부 테크노바에서 '물뽕(GHB)' 을 투입한 마약소주가 2만~3만원에 팔린다는 마약 경험자의 제보를 토대로 확인에 나섰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했다.

기획취재팀=이상복.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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