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제재 풀라"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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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걸프전 이후 10년 만에 외국 민간여객기가 이라크 상공을 비행, 바그다드 공항에 잇따라 착륙하고 있다.

서방국가인 프랑스가 유엔의 반대를 무릅쓰고 운항한 데 이어 러시아와 인접 아랍국가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무역봉쇄.항공기 취항금지 등으로 생활난이 극심한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 활기 찾는 바그다드 공항〓바그다드 국제공항은 지난 9월 17일 10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첫 손님은 같은달 22일 의료진 등 60여명을 태운 프랑스 항공기. 유엔 안보리의 반대를 무릅쓴 운항이었다.

이에 앞서 8월 중순부터 4대의 여객기를 보냈던 러시아 국영 항공 아에로플로트는 이라크 정부와 모스크바~바그다드간 정기항로 재개협상에 합의했다.

두 나라의 뒤를 이어 지난달 27일 요르단 여객기가 걸프전 이후 아랍국으로선 최초로 이라크에 내렸고, 29일엔 예멘의 압델 카데르 바자말 부총리 일행이 탑승한 보잉기가 의약품 등 구호물자를 싣고 바그다드 공항에 도착했다. 모로코와 인도 등이 곧 뒤를 이을 태세다.

◇ 확산하는 제재 해제론〓프랑스와 러시아의 항공기 운항을 계기로 이라크에 대한 제재 해제론이 다시 퍼지고 있다.

제재 해제론의 명분은 인도적 차원이다. 이라크 국민이 걸프전 이후 10여년 동안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면서 식료품.의약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국제적 인도주의 단체들은 이라크에선 한해에 어린이 수만명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고 있다고 전한다.

때문에 유엔 제재가 오히려 사담 후세인 대통령 등 집권층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 채 일반 시민에게만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해제론자들은 주장한다.

지난 봄엔 한스 폰 스포넥 유엔 이라크 조정관 등 유엔 관리들이 "아무런 효과가 없는 이라크 제재를 중단할 것" 을 주장하며 잇따라 사퇴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곤혹스러운 쪽은 유엔안보리다. 미국과 영국은 프랑스와 러시아 움직임에 유감을 표시하며 다른 나라로 확산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 반미국가들의 결속 움직임〓국제사회 여론이 미국에 불리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 의해 무역제재를 받고 있는 '불량국가' 들이 결속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밤 쿠바를 방문,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회담했다.

쿠바 공산당 기관지는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꼽고 있는 두 나라의 결속을 다진 회담" 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하타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타하 야신 라마단 이라크 부통령과 베네수엘라에서 만나 관계개선을 다짐했다.

두 나라는 8년간 계속된 이란 - 이라크 전쟁 끝에 1988년 휴전했으나 지금까지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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