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남북 장관급회담 알맹이 없이 막내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3차 장관급회담은 평양 정상회담 이후 남북이 합의.실천한 현안을 총점검하고 향후 남북관계의 '호흡' 을 조절하려는 자리였다.

특히 1차 회담(7월.서울) 이후 매달 열리던 것을 앞으로는 두달 뒤(11월)에 열기로 한 것은 횟수보다 내실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 뭘 논의.합의했나〓회담 관계자는 30일 "과거 같으면 얘기도 꺼낼 수 없는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협의했다" 며 공동보도문에 없는 현안을 깊이 다뤘음을 내비쳤다.

이산가족 서신교환.상봉을 앞당겨 시행하는 방안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남(訪南)시기, 대북지원 식량의 분배 투명성 확보 방안 등도 다루었다는 것이다.

합의내용 중 무엇보다 장관급회담을 남북관계의 중심협의체로 자리매김한 점은 성과로 꼽힌다.

경제협력추진위 설치를 논의해 분야별 협의체계를 본격화한 것도 마찬가지다.

또 경평(京平)축구 정례화를 비롯한 학술.문화교류의 폭도 넓어질 조짐이다.

정부는 북측이 대북지원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의를 표한 점을 주목할 만한 변화로 판단하고 있다.

그렇지만 합의내용 대부분이 새로운 게 없는 데다 구체적이지 못해 이행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동국대 강성윤(姜聲允.북한학)교수는 "새로운 현안을 만들기보다는 이미 합의한 내용을 지킬 수 있도록 회담전략을 짜야 한다" 면서 "조명록 군총정치국장의 방미 등을 계기로 북측이 남북대화를 북.미관계 개선의 '보조역량' 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는지 여부도 정부는 경계해야 한다" 고 말했다.

◇ 숨가빴던 수석대표 심야접촉〓합의사항 타결은 지난달 29일 수석대표간 심야회동에서 이뤄졌다.

이날 오후 10시쯤 제주 롯데호텔 8층 양식당 '페닌슐라' 에 모습을 드러낸 박재규(朴在圭)수석대표는 한시간이 넘도록 전금진(全今振)북측단장이 오지 않자 불쾌한 표정으로 12층 숙소로 올라가 버렸다.

몇 분 뒤 全단장이 나타났지만 朴수석대표는 내려오지 않았다.

팽팽한 신경전이 오간 뒤 밤 12시부터 두 사람은 이 식당의 '퀸룸' 에서 단독 협의를 벌였다. 최대 쟁점은 경협추진위와 경평축구 재개시기 등을 못박는 문제.

남측은 이번 회담에서 확정하자고 했고, 북측은 4차 회담 때 결정하자고 버텼지만 결국 남측이 양보하는 선에서 가닥이 잡혔다. 평양측 훈령(訓令)이 다소 강경했기 때문이다.

오전 1시10분쯤 양측 실무대표가 합의문안 절충을 시작했고 25분 뒤 두 수석대표도 자리를 떴다.

全단장은 기자들에게 "우리는 통일을 하자고 이렇게 원앙새처럼 회담을 한다" 며 연막을 쳤다. 호텔 관계자는 "두분이 물밖에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다" 며 무거웠던 회담 분위기를 전했다.

◇ 서로 다른 공동보도문〓남측 보도문 2항은 생사확인.서신교환 등 이산가족 문제 조치를 '올해 말부터' 로 시기를 못박고 있지만 북측에는 '조속히' 라고만 적혀 있는 등 상당한 차이가 눈에 띈다.

또 4항 남북경협추진위원회 구성도 남측은 '협의 설치한다' , 북측 보도문에는 '필요하면 각기 연구.실현한다' 로 돼있다.

5항에서 우리측이 제시하고 있는 경평축구와 교수.대학생 교류문제가 북측 보도문에는 '사회.문화.체육 등 제반 분야의 협력교류' 라고 추상적으로 다루고 있다.

과거 어투나 표기법 차이 정도였던 공동보도문이 이번에는 내용까지 달라 남북이 해석을 둘러싼 논란을 벌일 가능성도 지적된다.

제주〓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