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더 성장하려면 기업가정신 살려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한국은 일본과 비슷해 걱정이 된다.”

경영학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사진)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19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제3회 IGM(세계경영연구원) 경영대가 포럼’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장 경로가 일본과 비슷한 한국이 성장이 한계에 부닥친 일본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는 우려였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자동차를 예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의 세계적 자동차업체인 도요타는 소형 자동차 시장(코로나 등)부터 진출해 결국 고급차 시장(렉서스)에 이르기까지 대성공을 거뒀다. 이익이 적고 덜 매력적인 시장부터 차근차근 진입해 기존 강자의 자리를 빼앗고, 입지를 키운 것이다.

그는 “지금은 현대·기아차가 소형차 시장에서 도요타를 몰아내고 있다. 이후에는 인도의 타타와 중국업체가 한국을 추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만이 아니었다. 일본의 소니·캐논 등도 도요타와 같은 전략을 취했다. 시장의 아래 단계에 있는 중저가 제품에서 시작해 미국·유럽 기업을 몰아내고 정상에 올랐다. 1960~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은 기업들이 이렇게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면서 가능했다. 그러나 그 뒤 일본 경제는 침체일로를 치달았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일본 기업들은) 경쟁의 맨 윗부분에 올라간 후 갈 데가 없어졌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기업가정신을 가진 소규모 벤처들이 늘어나면서 살아남았지만, 일본은 최고의 위치에 올랐을 때 더 이상 무엇인가를 할 수 없었다”고 진단했다. 한국에 대한 그의 걱정은 결국 ‘기업가정신’의 부족인 셈이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한국 경제가 추락한 일본을 따라갈지, 더 큰 성장을 할지는 기업가정신에 달렸다”면서 “최선을 다해 기업가정신을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리콘 밸리를 구체적인 예로 들었다. 미국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실리콘 밸리의 성공기업 다수가 인도인·중국인·한국인·러시아인 등에 의해 창업됐다는 것이었다. 실리콘 밸리의 우수한 대학과 훌륭한 인프라가 주된 동인이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한국이 새로운 성장의 물결을 만들고 기업가정신을 독려하려면 모든 것을 한국인이 다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한국의 대학들이 (실리콘 밸리의 대학들처럼) 세계의 인재를 끌어당길 수 있고, 인재들이 한국에서 창업하고 싶다고 느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싱가포르보다 못할지 몰라도 배타적인 일본보다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날 그는 기업인들에게 ‘비소비 시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 확립돼 있는 시장보다는 아직 소비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비소비 시장에 접근하는 게 좋은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주머니가 얇은 10대들을 위한 소형 라디오로 진공관 시대를 접고 트랜지스터 시대를 연 소니를 예로 들며 “새로운 고객들을 공략해 시대를 바꾸고 성공했다”고 말했다. 유목생활을 많이 하는 몽골에서 최근 태양전지가 잘 팔리고 있는 것도 비슷한 사례로 꼽았다.

한국 기업들이 이미 성공한 중저가 제품시장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 것도 주문했다. 그는 “삼성, 현대·기아차, LG 등 대기업의 회장들이 한국의 기업들이 위대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면서 “중저가 제품 시장에서 새로운 성공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