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외무장관 자기혁신 수기 '…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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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책을 읽는 데에는 다분히 공리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 그것이 쾌락이든 교훈이든 상관없이 뭔가를 기대하고 읽는다.

읽기 쉽고 재미있으면서 얻는 것도 많을 때 그 책의 공리적 수준은 한층 높아지는데, 그런 측면이라면 이 책은 어렵지않게 합격선을 유지한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인 건강 혹은 다이어트에 대한 유념할 만한 가이드인 동시에 중년의 나이에 자기 혁신을 통해 전혀 다른 삶의 길을 살게된, 본받을 만한 한 인간의 의지의 내력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 읽어도 그 가치가 살아난다.

저자 요쉬카 피셔는 현 독일 슈뢰더 내각의 부수상이자 외무장관. 푸줏간 집 아들로 태어나 변변한 학력도 없이 '거리의 혁명가' 에서 인기높은 직업 정치인으로 성장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러나 남들이 쓴 몇 개의 잡문(雜文)에 피셔의 그런 역정이 드러나 있을 뿐, 전체적으로 성장사에 치중한 자서전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초점은 '달리기' 다.

그것도 42.195㎞ 인간 한계에 도전한다는 마라톤. 물론 피셔가 그것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물경 1백12㎏, 허리에 두툼한 '철갑 삽겹살' 을 두른 초비만 때문에 이혼을 당하고, 실의에 빠져 있던 40대 말의 그가 마라톤을 통해 '자기개조' 를 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했다.

책은 그 과정에 대한 면밀한 기록으로 다이어트 교본 구실을 한다. 다이어트 용품의 과대 광고에서나 있을 법한 37㎏ 감량 성공 사례를 놓고 어느 비만증 환자인들 귀가 솔깃하지 않을까. 하나 문제는 의지다. 그 초인적 의지에 감탄할 수 있다면 몇 ㎏의 감량 운운은 오히려 사소한 일처럼 보인다.

그는 말한다. "매일 달리기는 단지 살빼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목적과 수단의 관계는 완전히 바뀌었다. " 피셔는 달리기를 통해 이같은 내적 평온을 얻었고, 이는 정치인으로서 정력적인 활동을 하는 힘이었다.

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곤하는 데, 피셔에게 마라톤은 그야말로 인생 그 자체로 보인다.

달리기를 통해 명상에 가까운 집중을 얻을 수 있다는 대목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나는 달린다' 는 다분히 실용적 보고서이기 때문에 문학작품 같은데서 맡아지는 향기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흔한 성공담과는 구별되는 것도 분명하다. 번역자 역시 '달리기 중독자' .마라톤 완주기록을 보유한 그는 지난해 뉴욕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피셔 장관과 함께 뛰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번역이 깨끗하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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