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불편함의 진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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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제2보(10~22)=10부터 다시 본다. 이곳 몇 수가 박영훈 9단의 뇌리에 불편하게 남아 있다. 백10에 A로 나가 끊지 못하고 11, 13으로 눌려 버린 게 마치 기가 눌린 것처럼 찜찜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 여파가 14쪽의 정석 과정에 옮겨 붙고 있다. 흑은 이미 영역을 제한당한 터라 선택의 폭이 좁은 반면 백은 쉽다. 대충 안정하면 된다.

14의 허술한 눈목자와 이를 가르는 15의 날일자는 현대 바둑의 한 상징이다. 허허실실의 표본이라 할 이 정석은 구렁이처럼 비비 돌아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 냈다. ‘참고도 1’은 대표 정석 중 하나인데 축이 불리하므로 지금은 백이 둘 수 없다. 쿵제 9단은 18로 가볍게 붙여 갔는데 이 수가 축이 불리할 경우 적합한 수다. 19엔 20으로 젖혀 귀를 차지한다.

사실 귀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하지만 흑이 ‘참고도2’처럼 세력을 쌓는 것은 바보짓이다. 8, 10으로 다시 한번 눌리면 꼴이 이상해진다. 박영훈 9단은 고심 끝에 21로 끊는다. 하나 이 코스도 그리 맘에 드는 것은 아니다. 역시 10, 12로 눌려 버린 탓이었다. 기분 나쁜 바람이 모두 그쪽에서 불어오고 있다. 우상의 정석은 대략 ‘백 실리, 흑 세력’의 결말인데 세력이 이미 가치를 잃고 있어 자꾸만 자세가 불편해지는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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