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Top Woman] 2. 채트 가르시아 라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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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1세기는 정보화시대. 여성들에게는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에 힘입어 잠재된 그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의 시대' 이기도 하다.

세계의 여성운동가들은 산업화가 시작될 때 여성들이 뒷전으로 밀려나 남녀 불평등의 골을 깊게 팠던 지난날의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개발도상국의 여성정보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 중심에 채트 가르시아 라밀로(39)가 우뚝 서있다.

- 정보사회는 정치.경제.문화 등 다방면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새로운 여성 참여시대를 연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남성 영역이니, 여성 영역이니 하는 것들은 없어질까요.

"기존의 성차별적 영역들은 무너질 것입니다. 정보사회는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에 존재하는 불평등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여기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정보통신 기술은 남녀를 동등하게 할 뿐 아니라 적절한 경제적.사회적 발전을 이끄는 강력한 도구지요. 이 기술에 광범위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나 '접근' 은 단지 출발점일 뿐입니다. 훈련기회, 문자해독 수준, 사회 기본시설과 자원, 내용에 관해 여성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성들이 새로운 미디어가 지닌 힘을 인식하고 정보통신 기술에 흥미를 느끼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정보를 e-메일.메일링 리스트 같은 다양한 네트워크 도구를 사용해 디지털로 변환하는 데 쩔쩔매고 있습니다. "

- 정보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참여가 늘어나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남성 위주로 정보사회가 흘러가 도리어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걱정도 합니다. 미래 여성들의 지위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정보통신 시스템의 변화는 여성들에게 매우 상반되는 두가지 현실을 창조했습니다. 새로운 취업 기회에서부터 실업자의 증가까지, 혹은 '서로 더욱 긴밀해질 것' 에서부터 '더 심하게 소외될 것' 까지 말입니다.

새로운 정보통신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기회가 늘어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현저하게 세계화된 정보통신 공간으로부터 더욱 가장자리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통신시스템은 많은 나라에서 이제 거대한 매체 주식회사의 주요 센터가 됐습니다.

정보통신 기술로 서로 다른 부문간의 병합이 가능해져 거대한 힘의 집중을 가져왔습니다. 이런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마당에 여성들은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지요. 이와 같은 미디어 소유 형태는 여성들에게 더욱 정보를 갖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미디어의 발달은 여성의 왜곡된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별 도움이 못됩니다. 인터넷의 음란 사이트는 고소득을 올리며 늘어가기만 하죠. "

- 여성운동 단체나 여성문제 전담기관에서 여성 정보화를 이끌고 있어 일반 여성들이 다가가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주부나 일반 여성의 일상적인 삶과 거리가 먼 정보가 많고 내용도 비슷비슷해 외면하게 된다는 거죠.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여성의식화 같은 특정 내용에 치중해 있는 것은 여성운동이 정보화시대에서 수행하고 있는 지도자 역할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정보화시대로 세계 곳곳에서 사회의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여성운동이라는 찻잔 속에 담길 수밖에 없다는 게 바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디지털 기술로 여성 기구나 다른 많은 여성과 통신하면서 사고방식을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여성들이 '힘의 원천' 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게 바로 디지털시대의 덕이죠. "

- 여성 정보화가 농촌여성.도시빈민 여성.교육받지 못한 여성.노인여성.장애여성 등 이른바 소외계층의 여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소외계층 여성들이 배제되는 것을 막아줄 기본장비의 하나는 정보통신 기술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컴퓨터와 인터넷만이 아니라 이들 지역사회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미디어와 라디오로 효율적인 텔레커뮤니케이션 사회기본 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진보적 커뮤니케이션협회(APC)는 환경.인권.진보와 평화를 위한 범세계적 인터넷 공동체입니다. 이 협회 회원이 에콰도르의 토착 인디언들과 연결해 훈련을 하지요. 컴퓨터 네트워킹으로 정치적 캠페인만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인디언들이 생산한 물품의 수출도 돕습니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거죠. "

- 정보화사회에서는 정보의 신뢰성이 중요한 열쇠입니다. 정보를 구별하는 능력, 정보를 얻는 방법에 숙달해야죠. 혹시 비법이 있습니까.

"제 '비법' 은 두가지입니다. 근원의 신뢰성은 정보가 무엇을 통해 오는지로 판단하죠. 정보내용은 이중으로 체크해 틀림없는지 확인합니다. 다른 근원을 이용해 다시 한번 점검하는 거죠. "

- 정보화사회에서는 감성적인 사람이 더 잘 적응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여성의 특성에 비춰 보아 정보화시대는 여성에게 유리할까요, 불리할까요.

"여성의 이점은 정보를 매우 잘 이용한다는 것이죠. 힘든 일을 해나가려면 우리의 삶에 차이를 가져다줄 수 있는 정보의 생산자가 돼야 합니다.

언론인이나 작가 혹은 편집자가 돼라는 뜻이 아닙니다. 공적이건 사적이건 정보가 흘러가는 곳과 그 정보에 관해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여성들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여성들이 정보통신 기능을 형성하고 디자인하는 데 참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 어떤 정보는 자기만 가지고 있어야 유리하고, 어떤 정보는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줄수록 유리합니다. 이 속에서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집단주의가 팽배해져 지금과 같이 가족을 중시하는 가치는 무너질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가족주의에 매달려 있습니다. 정보화시대가 여성들의 삶에도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여성마다 다를 겁니다. 제게는 힘들게 싸워 얻은 자유와 권리가 중요합니다. 여성 운동에서 정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 자신의 경험과 꿈을 실어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여성들끼리 연대하도록 많은 여성을 교육해 오면서 이들이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한 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우리를 돕도록 했습니다.

여성들의 새로운 연대는 제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예를 들면 미국과 호주의 먼 지역에 있는 매맞는 여성들이 인터넷을 사용, 온라인에서 도움선을 구축하고 집단을 지원하지요. 이런 원격공동체는 무궁무진합니다. "

- 국경을 넘나드는 정보 네트워크가 진일보한 새로운 형태의 여성운동을 이끌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성 사이트들을 선진국이 주도해 이들의 관심사 위주로 여성운동이 이끌어져 각국의 여성 현안을 반영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개발도상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정보통신 기술에 적극 참여해 더욱 열심히 일해 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남반구에 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 여성운동단체와 세계에 실어보냈죠. 네트워킹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싸지도 않고, e-메일이나 메일링 리스트와 같은 고도의 기술적 방법도 필요하지 않은 네트워킹 기술을 이용해서 말이죠. "

- 현 단계에서 여성정보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정보통신기술이 야기한 '혁명' 의 핵은 인터넷의 놀랄 만한 성장입니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에 대한 접근, 특별히 인터넷은 가난하고 전자통신의 사회기본 시설이 빈약한 덜 도시화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의 접근을 어렵게 합니다.

장비.손재주.훈련.언어도 문제입니다. 정보초고속화는 아직도 현저히 남성 중심이어서 성희롱 포럼조차 있을 정도입니다.

만약 시골 여성도 새 기술의 득을 보려면 사회기본 시설의 확충뿐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기관이 있어야 합니다. 또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지역언어로 전달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얼마나 빠른 시간에 해결하느냐가 관건이죠. "

e-메일 인터뷰=홍은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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