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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대지진 참사를 현명하게 수습한 폼발 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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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포르투갈의 개혁가 폼발(1699~1782). 그는 지진으로 초토화된 리스본을 재건함은 물론 귀족 견제, 정교 분리, 예수회 추방, 노예제 철폐, 군대 개혁, 교육 개혁 등 후세에 길이 남을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국왕은 포르투갈을 근대국가로 만든 그에게 1769년 9월 후작 작위를 내렸다.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은 18세기 유럽에서 암스테르담과 런던 다음으로 번창하던 항구였다. 1755년 11월 1일 만성절(萬聖節) 아침, 리스본 시민들은 상 빈센트 데 포라 성당을 찾았다. 교회 앞 광장까지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예배 시작 직후 교회 전체가 폭풍을 만난 배처럼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산산조각 나고 대리석이 비 오듯 쏟아졌다. 경악의 비명이 도시 곳곳에서 울렸다.

첫 번째 지진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지진이 도시를 흔들었다. 이미 지반이 약해진 터라 첫 번째 지진을 견딘 건물들도 힘없이 무너졌다. 지진은 서곡에 불과했다. 교회를 밝히던 촛불과 주택의 난롯불이 시내 곳곳에 화재를 일으켰다. 다음은 물이었다. 갑자기 바닷물이 부풀어 올랐다. 이날 세 차례의 지진해일(쓰나미)이 리스본 해안을 강타했다.

절망에 빠진 국왕 조제 1세에게 총리 폼발이 대책을 제시했다. “죽은 자를 묻고 산 자에게 먹을 것을 줘야 합니다.” 왕은 그에게 재난 수습 전권을 줬다. 지진으로 부서진 감옥에서 수백 명의 범죄자가 빠져나와 약탈·방화·살인을 저질렀다. 가히 종말론적 혼돈이었다. 폼발은 죽은 자를 묻고 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기 전에 ‘질서’를 회복해야 했다. 약탈자 처벌을 위해 즉결재판 제도를 도입하고 범죄자를 교수형에 처했더니 효과가 즉각 나타났다. 약탈 행위가 뚝 끊겼다.

폼발은 식량보급소를 세우고 무장 군인들의 감시 아래 식품을 공정하게 분배했다. 사람들 사이에 굶주림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 거리에는 수천 구의 시체가 쌓였고 소름 끼치는 악취가 온 도시에 진동했다. 폼발은 리스본 대주교에게 요청해 전통적인 장례의식을 생략하고 시체를 즉시 수장하도록 했다. 폼발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종말론을 들먹이는 광신적 사제들이었다. 그들은 신의 진노가 또 임하기 전에 저주받은 도시를 탈출하라고 설교했다. 그 결과 도시 복구에 꼭 필요한 일손이 빠져나갔다. 폼발은 광신도들이 입을 다물길 바랐지만 대주교는 사제들을 전혀 질책하지 않았다. 폼발은 1759년 예수회를 포르투갈에서 추방하는 법령을 선포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이 지진으로 리스본 인구 27만 명 중 10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됐다. 포르투갈 역사상 전무후무한 자연재해였다. 폼발이 이끈 강력하고 효과적인 재해 대책은 근대적 재난 관리의 시초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추진한 도시 재건사업 덕분에 리스본은 근대적 도시계획의 모범이 됐다. 폼발의 리스본 복구대책은 최근의 아이티 지진 참사에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