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개혁가 폼발(1699~1782). 그는 지진으로 초토화된 리스본을 재건함은 물론 귀족 견제, 정교 분리, 예수회 추방, 노예제 철폐, 군대 개혁, 교육 개혁 등 후세에 길이 남을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국왕은 포르투갈을 근대국가로 만든 그에게 1769년 9월 후작 작위를 내렸다.
첫 번째 지진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지진이 도시를 흔들었다. 이미 지반이 약해진 터라 첫 번째 지진을 견딘 건물들도 힘없이 무너졌다. 지진은 서곡에 불과했다. 교회를 밝히던 촛불과 주택의 난롯불이 시내 곳곳에 화재를 일으켰다. 다음은 물이었다. 갑자기 바닷물이 부풀어 올랐다. 이날 세 차례의 지진해일(쓰나미)이 리스본 해안을 강타했다.
절망에 빠진 국왕 조제 1세에게 총리 폼발이 대책을 제시했다. “죽은 자를 묻고 산 자에게 먹을 것을 줘야 합니다.” 왕은 그에게 재난 수습 전권을 줬다. 지진으로 부서진 감옥에서 수백 명의 범죄자가 빠져나와 약탈·방화·살인을 저질렀다. 가히 종말론적 혼돈이었다. 폼발은 죽은 자를 묻고 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기 전에 ‘질서’를 회복해야 했다. 약탈자 처벌을 위해 즉결재판 제도를 도입하고 범죄자를 교수형에 처했더니 효과가 즉각 나타났다. 약탈 행위가 뚝 끊겼다.
폼발은 식량보급소를 세우고 무장 군인들의 감시 아래 식품을 공정하게 분배했다. 사람들 사이에 굶주림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 거리에는 수천 구의 시체가 쌓였고 소름 끼치는 악취가 온 도시에 진동했다. 폼발은 리스본 대주교에게 요청해 전통적인 장례의식을 생략하고 시체를 즉시 수장하도록 했다. 폼발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종말론을 들먹이는 광신적 사제들이었다. 그들은 신의 진노가 또 임하기 전에 저주받은 도시를 탈출하라고 설교했다. 그 결과 도시 복구에 꼭 필요한 일손이 빠져나갔다. 폼발은 광신도들이 입을 다물길 바랐지만 대주교는 사제들을 전혀 질책하지 않았다. 폼발은 1759년 예수회를 포르투갈에서 추방하는 법령을 선포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이 지진으로 리스본 인구 27만 명 중 10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됐다. 포르투갈 역사상 전무후무한 자연재해였다. 폼발이 이끈 강력하고 효과적인 재해 대책은 근대적 재난 관리의 시초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추진한 도시 재건사업 덕분에 리스본은 근대적 도시계획의 모범이 됐다. 폼발의 리스본 복구대책은 최근의 아이티 지진 참사에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