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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문의 새 길] 6. 비판시민사회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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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시민사회는 지난 10여 년 간 우리사회 변동을 판독할 수 있는 대표적인 화두(話頭) 가운데 하나다.

1987년 권위주의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폭발에서 최근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에 이르기까지 시민사회는 학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켜 왔다.

이 시민사회를 둘러싸고 그간 다양한 논쟁들이 전개돼 왔다. 구체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냐 보수주의냐' '시민 없는 시민운동' '시민권력의 과잉화' 등은 그 주요 쟁점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시민사회 논쟁은 한국 시민사회론의 새로운 갱신을 요구해 왔는 바, 나는 이 새로운 시민사회론을 '비판시민사회론' 으로 부르고자 한다.

비판시민사회론은 시민사회의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을 적극 고려하고자 하는 패러다임이다.

여기서 '비판' 이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서구 시민사회론의 일방적인 수용에 대한 비판을 의미하는 동시에 시민사회와 비정부조직(NGO)의 비판적 기능을 강조하는 것을 뜻한다.

주지하듯이 시민사회란 가족.자발적 결사체.사회운동.공공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는 행위 주체이자 활동 영역이다. 이 시민사회의 성격을 간단히 규정하기 어려운 것은 그 구성 요소들이 서로 다른 성향을 보여준다는 점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경우 '확대 가족주의' 로서의 연고주의가 시민사회의 이기적이고 무규범적인 성격을 강화해 왔다면, 시민운동은 민주주의 공고화를 위한 비판적 성향을 강하게 표출해 왔다.

따라서 우리 시민사회를 보수적인 혹은 진보적인 공간 그 어느 하나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리 타당하지 않다.

시민사회의 이러한 이중성, 즉 실증적 수준의 보수적 성격과 규범적 수준의 유토피아적 성격이 공존하고 결합돼 있는 '이중적 시민사회' 야말로 한국 시민사회의 자화상이자 현주소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분단에서 권위주의를 거쳐 민주화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의 경험이 생생히 각인돼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비판시민사회론은 서구 시민사회론의 일방적인 적용을 불허한다. 한국 시민사회의 이중성을 객관적으로 고려하되 참여민주주의 공간으로서의 시민사회 본래의 의미를 적극 복원해 내고자 하는 것이 비판시민사회론의 첫 번째 목표이다.

비판시민사회론이 주목하는 두 번째 흐름은 정보사회의 도래에 따른 사이버 공간의 시민사회, 즉 '전자적 시민사회' 의 등장이다.

전자적 시민사회는 시간과 공간의 구속을 넘어서고 수직적인 지배를 거부하는 쌍방향 의사소통을 활성화시킨다.

이 전자적 시민사회의 등장은 현재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특히 네티즌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사이버 여론은 현실 정치와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시민운동의 고유한 전략 가운데 하나가 국가와 시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영향의 정치' 에 있다면, 전자적 시민사회는 여론이 형성되고 결집되는 또 하나의 공공영역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나아가 이 전자적 시민사회는 '지구적 시민사회' 의 형성에도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오늘날 정보화와 한 쌍을 이루는 세계화의 본질은 자본의 세계화에 있으며, 이런 초국적 자본에 대응하는 사회운동의 세계화가 사이버 공간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정보사회의 도래와 세계화의 강화에 따른 21세기 시민사회의 구조변화를 적극 반영하고 이에 걸맞은 '지구적 민주주의' 를 모색하는 것이 비판시민사회론의 두 번째 목표이다.

현재 우리사회에는 대략 2만 개가 넘는 NGO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NGO들은 대규모 시민단체에서 소규모 결사체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 이슈 또한 정치개혁에서 동성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문제들이 망라돼 있다.

이러한 NGO의 역할이 과잉화되는 것은 일각에서 지적하듯이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돌아 볼 때 국가와 시장은 여전히 강력한 반면 시민사회는 상대적으로 허약하다.

시장논리 혹은 국가논리의 전면화는 단기적으로 가시적 성과를 가져다 줄 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시민사회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의 장소로서 황폐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사회 없는 시장' 또는 '사회 없는 국가' 란 '인간 없는 시장' 내지 '인간 없는 국가' 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NGO는 정부정책의 감시자로서, 기업운영의 회계사로서, 그리고 이기적 시민사회와 무규범적 시민문화의 개혁주체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새롭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비판시민사회론이 겨냥하는 세 번째 목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이중적 전환' 의 과제에 직면해 있다. 지난 한세기 동안 구조화된 정치적 권위주의, 천민적 자본주의, 이기적 시민사회를 국민국가적 단위에서 개혁해야 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라면, 그것을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전지구적 흐름에 접목시켜야 하는 것은 다른 하나의 과제이다.

비판시민사회론은 이러한 과제 가운데 시민사회를 내부적으로 혁신하는 동시에 국가와 시민사회, 시장과 시민사회간의 민주적 견제와 협력 관계를 적극 모색하고자 한다.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소망스러운 것이라면 그것은 참여민주주의를 활성화할 수 있는 '강하면서도 민주적인 시민사회' 를 통해 성취될 수 있다.

◇ 다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봉렬 교수의 '집합적 건축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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