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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팬들, 총리 부인의 ‘특권’이 못마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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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어쩌다보니 나도 애꿎은 남의 나라 총리 부인에게 ‘열폭(열등감 폭발)하는 1인’이 되고야 말았다. 일본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아내 하토야마 미유키 여사 말이다. 지난주 나의 오빠들, 스마프(SMAP)가 진행하는 후지TV의 인기 토크쇼 ‘스마스마(SMAP*SMAP)’ 신년특집 생방송에 초대 손님으로 등장한 그녀. 오빠들이 만들어 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소녀처럼 까르르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팬녀’의 한 명으로서 은근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쇼 마지막에 직접 음식을 만들어 멤버들에게 먹여 주기도 하고, “총리공관으로 초대하겠다”는 멘트를 날릴 땐 하마터면 “아니, 이 빵꾸똥꾸 아줌마가!”라고 소리 지를 뻔했다.

일본의 대표 오락 프로그램인 ‘스마스마’에는 아베 신조, 아소 다로 전 총리 등 정치인들이 가끔 출연하지만(물론 두 사람 다 총리가 되기 전에 출연), 총리 부인이 초청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만큼 미유키 여사에게 쏠리는 일본인들의 관심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녀의 이력과 캐릭터는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일본의 여성가극단 ‘다카라즈카’의 여배우 출신으로 일흔 살이 가까운(1943년생) 나이에도 앞머리를 곱게 내린 단발머리에 아방가르드 한 패션 감각을 자랑한다.

‘라이프 스타일리스트’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비법을 담은 요리책을 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그녀가 내뿜는 밝은 에너지와 권위를 벗어 던진 소탈한 모습. 이날 ‘스마스마’에서도 그녀는 “신년 연휴에는 모자를 눌러쓰고 혼자 쇼핑을 나갔다” “총리관저가 너무 넓어 잠이 잘 안 온다” 등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줘 호감도를 높였다.

물론 일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UFO를 타고 금성에 간 적이 있다” “할리우드에서 톰 크루즈를 주연으로 영화를 찍는 것이 꿈”이라는 등의 황당한 이야기에는 “부끄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녀는 열정적인 한류 팬인데, 그와 관련된 활동에 대해서도 찬반이 엇갈리는 모양이다. 총리 부인이니 한·일 양국 정부의 공식적인 행사에 참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배용준의 책 출판기념회나 원빈이 나온 영화 ‘마더’ 시사회를 찾아가 배우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총리 부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한 취미 생활”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미유키 여사를 보는 한류 팬 아줌마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물론 그녀의 등장이 중년 한류 팬 여성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측면도 크다. 아들뻘 되는 외국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데 대한 약간의 부끄러움을 없애 줬다고나 할까. ‘총리 부인도 이서진 팬이라는데 나라고 이상할 것 있어?’라는 생각. 반면 자신들이 공항에서 한류 스타 얼굴을 한 번 보려고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총리 부인이라는 이유로 호텔에 당당히 찾아가 선물을 주고 포옹까지 하는 그녀가 마냥 좋게 보일 리만은 없다.

지난해 9월 도쿄에서 열린 ‘한·일 축제한마당’ 개막식. 초대 가수로 나온 SG워너비를 보기 위해 새벽부터 기다린 한 일본 팬은 미유키 여사가 행사에 깜짝 등장하자 “저분, 행사 끝나고 멤버들 만나러 가는 것 아냐?”라며 투덜댔다. 이 아주머니, 집에 돌아가 ‘총리와는 거리가 먼’ 남편에게 한바탕 바가지를 긁었을지도. 나날이 떨어지는 하토야마 총리의 지지율에는 이런 한류 팬들의 불편한 감정 역시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가요·만화 등을 담당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 ‘스마프(SMAP)’를 향한 팬심으로 일본 문화를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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