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 중독 전과10범, 치료사로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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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 1일 오전 10시 충남 공주 법무부 치료감호소 교육훈련장. 지난달 22일 제2대 청소년보호위원장에 취임한 김성이(金聖二)위원장과 '본드 중독자' 金선우(가명.30)씨가 마주앉았다.

金위원장은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의 '약물남용상담 전문교육과정 수료증' 을 金씨에게 건넸다.

'이 분은 본 대학교 평생교육원 약물남용상담 과정을 이수하였으므로 규정에 따라 이 수료장을 수여함' . 국내 처음으로 약물 중독자에게 약물상담 전문가 자격이 수여된 것이다.

金위원장은 "내년 5월 출소하면 청소년보호위에서 청소년 약물 치료사로 채용하겠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金씨는 "아직 저도 제 자신을 믿지 못하지만 교수님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면 초등생 딸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보겠다" 고 대답했다.

한국 약물상담가 협회장을 지낸 金위원장과 15세 때부터 본드를 흡입해온 전과 10범의 약물중독자. 두 사람의 인연은 2년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화여대 약물상담과정 책임교수였던 金위원장은 공주감호소로부터 "金선우씨라는 출소예정자가 있는데 약물상담가 과정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 는 부탁을 받았다.

'전문대졸 이상의 학력' 인 입학요건을 갖추지 못한 金씨였지만 金위원장은 흔쾌히 그의 입학을 받아들였다. 선진국처럼 우리나라에도 '실제 경험' 이 있는 청소년 대상 약물상담가가 절실하다고 생각해온 터였기 때문이다.

1998년 3월 평생교육원에 입학한 金씨는 보건.의료계 전문가들과 함께 '개인 상담' '재발 방지' '중독 예방' 등 16학점 과정을 착실히 이수하며 순탄한 새 출발을 맞는 듯했다.

그러나 수료증 수여를 불과 20여일 앞둔 그해 11월, 金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그만 본드에 손을 대고 말았다.

실망한 金씨의 어머니(60)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경찰에 신고했고 金씨는 다시 수감됐다. 여전히 그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는 金위원장에게 최근 金씨로부터 한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교수님,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품었던 약물중독 청소년 선도에 대한 각오를 되살리고 싶습니다.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지금이라도 수료증을 보내주신다면 열정이 솟아날 것 같습니다'.

金위원장은 취임 후 첫 지방 출장지를 공주감호소로 결정했다.

약물 중독자들이 출소 뒤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중간 시설' 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金위원장은 "金씨 같은 사람조차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비극이자 문제점" 이라며 "위원장 임기 4년 동안 반드시 金씨를 훌륭한 전문상담가로 변모시켜 놓겠다" 고 다짐했다.

공주=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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