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오늘은 아웃테리어 내일은 인테리어, 숨쉬는 LE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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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글=이진주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서울 스퀘어빌딩의 LED캔버스에 밤마다 그려지는 미디어 아트 작품 ‘미메시스 스케이프’(양만기 작). 르네 마그리트의 ‘골콘다’ 모티프와 웨더걸즈가 불렀던 팝송 ‘하늘에서 남자들이 비처럼 내려와(It’s Raining Men)’가 빌딩 위에서 만났다.

거대한 건물을 빛의 캔버스로

서울역 앞에 새로 단장한 서울스퀘어빌딩(옛 대우빌딩)은 밤이면 거대한 캔버스가 된다. 너비 99m, 높이 78m로 세계 최대 규모다. 날이 어두워지면 이 건물의 전면엔 사람들이 서류가방을 든 채 어디론가 걸어가고(워킹피플, 줄리언 오피 작), 우산을 든 남자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미메시스 스케이프, 양만기 작) 그림이 환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설치하는 데 30억원이 들었다는 4만2000여 개의 LED 도트가 만들어내는 형상이다.

이런 기법을 ‘미디어 파사드’라고 한다. 미디어 파사드는 2004년 갤러리아백화점 ‘무지개 비늘’로 첫 장을 연 이래 서울스퀘어에선 빛으로 움직이는 회화의 단계로 발전했다. 앞으로 서울스퀘어의 그림판엔 문경원·김신일·류호열 작가 등의 미디어아트 작품이 차례로 등장할 예정이다.

세계 각 도시마다 건물에 다양한 형태로 미디어 파사드가 실험되고 있다. 관람객들이 터치스크린을 조작해 외관의 디자인을 바꿀 수 있도록 한 건물도 있다. ‘터치’라는 이름의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가 설치된 벨기에 덱시아 타워다. 이 프로젝트는 미디어 파사드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오스트리아의 유니콰 타워는 빛을 이용해 건물이 휘어지고 꼬이는(twists and turns)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역시 오스트리아에 있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미술관은 뉴미디어아트 전시관답게 4만여 개의 LED로 다양한 색을 표현한다. 독일에 있는 자일갤러리 옥상에는 기상관측소가 설치돼 기온에 따라 건물 색이 변한다. 섭씨 0도일 때는 회색을 띠는 푸른색이었다가 기온이 올라가면 노란색으로 바뀐다. LED 패널은 도로에서 나는 소리를 시각적으로 재현한다. 일본은 명품거리로 유명한 도쿄 긴자의 샤넬 부티크 등 물량 면에선 단연 앞서가고 있다.

미디어 아트, 언제 집으로 들어올까

전문가들은 ‘머지않아’라고 답한다. 실제로 최근 짓는 아파트들은 LED조명으로 아웃테리어를 하고 있다. LED 조명을 이용해 우주선처럼 빛을 내뿜는 서울 반포동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 한 면에 LED를 바른 경기도 오산 대림 e-편한세상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GS건설은 자이 아파트 외벽을 통으로 털어 영상을 구현하는 기획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파트의 한 단지가 테마를 가진 거대한 작품이 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

아직 인테리어에선 실험만 왕성하다. 날씨와 사람의 목소리에서 정서를 감지해 색깔이 변하는 LED가 이미 개발돼 있다. 상용화되면 색에 온도를 입혀 그때 그때 기분에 맞게 집안을 연출할 수 있다. 2006년과 2008년 밀라노 ‘유로루체’ 페어에서는 벽지를 대체하는 LED 아트월이 시연됐다. 서울스퀘어 조명디자인을 총괄했던 비츠로의 고기영 대표는 “빛으로 벽난로를 연출하는 등 환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LED의 선명도가 개선되면 명화를 거실 전체에 재현할 수도, 취향에 맞게 편집할 수도 있다. LED 인테리어는 가까운 장래에 세컨드하우스나 주거와 일터가 결합된 컴바인드하우스 같은 곳에 적용된 후 일반 주거에도 전파될 것이다.

LED 아트월에 벽난로·꽃 등 문양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사진 왼쪽). 벨기에 덱시아 타워는 관람객들이 터치스크린을 조작해 외관의 디자인을 바꿀 수 있다.


4C(코스트·코워크·콘텐트·컨디션)가 관건

상상이 현실로 가는 데 난관도 있다. 먼저 비용(cost)이다. LED 조명은 비슷한 효과를 내는 형광등보다 4~5배 비싸고, 설치비용이나 청소·콘텐트관리 등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발전 속도라면 2015년께면 비용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LED는 고효율 조명으로 지구를 살리는 아이템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정부와 기업들이 LED 조명으로 바꾸고 있다. 시장이 커지고 있는 만큼 기술 개발도 빨라지고, 비용 절감 효과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아직까지는 빛의 색깔에서 세련미가 떨어진다. 조명과 건축과 예술가들의 협업(co-work)을 통해 튀는 색상에서 어울리는 색상으로 잡아나가야 한다는 과제도 남아 있다. 건물 캔버스에 구현할 미디어아트 작품(contents)들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더 많아야 한다. 사적인 공간인지 공적인 공간인지에 따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컨디션(condition)을 배려하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침실 벽지가 수시로 바뀐다면 정신만 산란하다. 여러 사람이 오가는 호텔 로비가 몇 달째 그 밥에 그 나물 타령이라면 곤란하다.

빛이 우리의 감성을 대변해주고, 빛이 집이 돼주고, 빛이 도시가 되는 날은 기다리지 않아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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