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어릴 때부터 쌀쌀한 실내 적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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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같은 날 최저기온이 1도였던 프랑스 파리의 로베르토 모로의 가족은 실내에서도 두툼한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모로 가족은 한겨울에도 실내온도를 19도로 유지하고 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프랑스 파리에 사는 이탈리아인 로베르토 모로(42)의 집에는 실내 온도와 습도를 점검할 수 있는 디지털 온도계가 있다. 아내 일라리아(40)는 온도계를 들고 다니면서 거실과 아이들 방의 온도를 점검한다. 지난 15일 저녁 모로의 집에 들렀다. 거실에 있는 온도계는 1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모로 부부와 아들 마티아(9), 딸 이렌(2) 모두 두툼한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모로는 “이탈리아·프랑스 등 대부분의 유럽 가정에서는 겨울철에 20도를 넘기지 않는 게 보통”이라며 “어릴 적부터 에너지 절약을 해야 한다는 걸 학교나 가정에서 많이 들어 습관이 됐다”고 했다. 그는 “가족들 모두 겨울에는 두꺼운 셔츠나 스웨터를 입고 지낸다”고 말했다. 일라리아는 “소아과 의사들이 아이들 건강을 위해 옷은 따뜻하게 입히되 실내 기온은 19도를 넘기지 말라고 하더라”며 “아이들 건강을 위해 실내 기온을 자주 확인한다”고 했다.

유럽에서는 어딜 가나 우리나라처럼 더운 곳은 찾기 쉽지 않다. 사무실이나 공연장은 물론 호텔에서도 한기가 느껴지곤 한다. 특히 이탈리아 등 몇몇 나라는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장소의 실내 온도 기준을 마련해 놓고 이를 의무적으로 지키도록 한다.

모로는 “10여 년 전 이탈리아 밀라노 IT업체에서 근무할 당시 겨울에 사무실이 쌀쌀하면 체조도 하고 제자리 뛰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특히 10∼11월 중순까지는 아예 난방을 못하도록 하는 곳도 많다. 파리 15구 아파트 경비원 프랑시스 베즈마는 “12월이 되기 전까지는 파리시에서 정한 온도 이하로 떨어져야 중앙 난방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일본에서도 겨울철 실내 온도는 높지 않다. 도쿄 신주쿠(新宿)에 사는 30대 주부 이시카와 도모미(石川朋美)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드는 두 아이 이불 안에 유탄포(湯たんぽ)를 넣어주는 게 일과다. 유탄포는 고무나 철제 팩에 뜨거운 물을 부어 사용하는 온열기로 최근에는 전기 충전식이 대중적이다. 온풍기를 틀자니 실내가 건조해지고, 밤새 전기난로를 켜면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없다. 유탄포는 20분 충전으로 3~4시간까지 온기가 유지되기 때문에 온돌과 같은 바닥 난방이 없는 일본 가정에서 애용되고 있다.

북부 지방을 제외한 일본의 웬만한 집들은 건물 단열재도 변변치 않고 창도 홑겹이어서 난방을 해도 20도를 넘기기 힘든 구조다. 아이들도 “차라리 밖에 나가 볕에서 노는 게 집 안에 있는 것보다 따뜻하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옷을 많이 껴입는 방법이다. 이시카와 가족은 12월부터 두꺼운 실내 덧신을 신고 내복을 입는다. 겨울철엔 난방을 해둔 한 방에 온 가족이 모여 잠을 잔다.

일본 정부도 2005년부터 겨울엔 실내 온도를 내리는 대신 스웨터를 껴입는 이른바 ‘웜비즈’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관공서의 겨울철 실내 온도는 18도에 맞춰져 있다. 민간 기업이나 상점도 관공서보다 약간 높을 뿐이다. 지난해 12월 도쿄 도심 니혼바시(日本橋) 지역의 45개 상가와 기업은 웜비즈 캠페인을 펼치면서 난방 온도를 예년보다 더 낮은 20도 미만으로 설정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우드브리지에 사는 캐럴(53)의 2층짜리 단독주택은 겨울철 실내 난방 온도가 18도에 맞춰져 있다. 손님들이 올 경우에만 조그만 전기 담요를 꺼내 응접실 소파에 올려 놓는다. 거실에서 부엌으로 향하는 복도 끝에 달린 하얀색 커튼은 장식이나 보안용이 아니라 방한용이다. 캐럴의 가족은 실내에서도 항상 스웨터 차림으로 겨울을 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미국의 오래된 단독주택들은 대부분 단열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지만, 집 넓이가 만만치 않아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대부분 난방을 가급적 자제한다.

도쿄·워싱턴·파리=박소영·김정욱·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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