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붙이였던
헌 옷가지들과 낡은 기억들에
불을 놓는다
허울의 흔적마저 떨쳐내려는
나를
풀들이 빠안히 쳐다본다
기웃거리며, 삐죽거리며
주저앉은 시간들이
일순 불꽃으로 황홀하다
마침내는 연기로 날고 싶다
허울도 덜 무거운 것만
날개에 싣고 떠나는구나
재로 뒤처진 것
흙으로 스며들까
좋아하는 풀이나 나무 가까이로 가서
- 김현숙(53) '불 속의 길' 중
허물없이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살다가 보면 때때로 헌 옷가지를 태우듯 태워버리고 싶고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이 있다. 아무리 거센 불꽃을 피워도 태워지지 않는 그것을 김현숙은 잘도 태우고 있다. 풀들이 빠안히 쳐다보는 가운데 마침내 연기로 날아보는 자기연소. 한 줌 재로 남아서 좋아하는 풀이나 나무 가까이 흙으로 스며드는 이 거듭나기가 아름답지 않은가.
이근배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