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품질은 좋아도 제 대접 못 받는 국내산 육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49호 35면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일단락된 지난해 봄에 경험한 일이다. 서울 강남의 한 농협 판매장에서 육우를 판매하고 있었다. 당시 판매직원이 소비자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 “우리 농민을 위한다는 농협에서 육우 고기를 팔 수 있느냐. 혹시 옆에 진열된 한우도 육우 아니냐”는 항의성 질문이었다. 육우를 마치 먹을 수 없는 고기인 양 간주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곤 했다. 그 때문에 육우는 서너 달 만에 그 매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한국 소비자들의 육우에 대한 편견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다.

On Sunday 기획칼럼 ‘한우와 육우, 제대로 알자’

흔히 소비자들은 ‘국내산 쇠고기’ 하면 금방 한우를 떠올린다. 한국갤럽의 2008년 말 여론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쇠고기 구입 시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품질이나 가격이 아닌 원산지를 꼽았다. 국내산 한우에 대해서는 수입육보다 두세 배 가격이 비싸도 기꺼이 사먹을 만큼 무한한 애정을 보인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절반가량은 국내산 쇠고기인 육우에 대해 잘 모르거나 심지어 수입육 또는 젖소 고기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같은 국내산 쇠고기인데 왜 육우는 홀대받고 있을까? 보통 젖을 짜는 얼룩소(홀스타인종)는 수소와 암소를 낳는다. 당연히 암소는 젖소로 키워진다. 그렇다면 우유를 못 짜는 수소의 운명은? 얼룩소 수송아지는 출생 직후부터 한우와 똑같은 방식으로 키워낸다. 이것이 ‘육우’다. 등급 판정기준도 동일해 한우 1등급과 육우 1등급은 맛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 한 예로 농협 직원을 대상으로 시식 테스트를 해보면 육우 고기를 정확하게 구분해낸 사람은 30%에 불과했다.

문제는 유통 과정에 있었다. 육우는 그동안 일부 몰지각한 유통업자들의 손에 의해 한우로 둔갑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가격이 30~40% 싸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유 생산능력이 다해 도축된 젖소 고기조차 육우로 둔갑돼 소비자들의 불신 대상이 됐다. 악덕 업자들이야말로 쇠고기 시장의 독버섯 같은 존재다.

이런 현상은 ‘쇠고기 이력추적제’와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가 강화되면서 크게 나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많다. 육우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소매점이 거의 없고, 대형마트 또한 한우와 수입육만을 취급하려는 매장이 대부분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다양한 선택 기회가 줄어들고 육우 소비는 다시 감소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요즘엔 쇠고기 시장을 놓고도 각 고장이 앞다퉈 브랜드를 출시해 경쟁하는 세상이다. 농협 역시 2년 전 대표 브랜드인 목우촌 육우를 출시했다. 농가가 안전하게 생산한 고품질의 육우만 엄선해 팔자는 취지였다. 수입 쇠고기가 범람하는 시대에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고 축산 농가에 안정된 출하를 보장하려면 육우 브랜드를 활성화하는 게 절실하다. 농협이 깨끗하고 안전하게 생산된 ‘브랜드 육(肉)’을 소매점이나 인터넷몰 같은 다양한 판매처에 공급하고 있는 이유다.

소비자의 힘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우리의 식량 자원을 보호하고 먹을거리 품질을 높이려면 농협이나 관련 단체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고향 땅에서 시름에 젖어 있을 축산 농가를 위해 새해에 한번쯤 ‘신토불이’란 단어를 떠올려 주시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