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두만강 대탐사] 1. 강은 대륙을 열고 있네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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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중앙일보는 창간 35주년을 맞아 한.중.러 국경지대를 심층 취재하는 '압록-두만강 대탐사' 에 나섰다.

국내 및 현지의 각계 전문가 12명과 본지 기자 등 15명으로 구성된 탐사단은 지난 8일 현지로 떠나 13박14일 동안 현장을 조사했다.

중앙일보는 지난 5~6월 휴전선을 분단.반목이 아닌 평화와 화해의 출발점이란 시각에서 답사, 연재한 바 있으며 이번 '압록-두만강 대탐사' 는 지난 답사를 확장한 기획이다.

우리는 압록-두만강 지역을 단지 국경 개념에 머물지 않고 우리 역사의 중심무대, 유라시아 대륙에의 출발선이란 관점에서 오늘의 의미를 짚어보려 애썼다.

분단으로 가려져 멀게만 느껴졌던 압록-두만강과 거대한 대륙의 실체.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이들의 참모습을 오늘부터 전문가들이 다각적으로 조명해 본다. LG가 후원했다.

어딘들 마다하리오마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국경선을 답사하는 것은 내 맘 속에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던 꿈의 여로였다.

나는 정말로 국경선을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다.거기에 고구려-발해의 유적이 있고,압록-두만-백두의 대자연이 있고,랴오닝(遼寧)-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이른바 중국 동삼성(東三省)에 조선족 2백만의 삶이 있기에 그 자연과 역사와 인간에 대한 답사를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한국인의 의식구조 속에서 사실상 국경선은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그려온 여로였다.

우리는 한반도에 살고 있다.그러나 분단 5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말이 반도이지 반도적 삶을 누려보지 못했다.

반도란 대륙의 한쪽에 붙어 광활한 대지에로 뻗어 오르려는 기상이 있을 때 제 값을 하는 것이다.그러나 분단으로 인하여 대륙으로 향하는 길을 잊어버린 채 바다만 내다보고 반세기를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섬나라 해양인의 분방한 해방감을 누리지도 못했으니 그 형상이란 거대한 대륙의 낭떠러지에 매달린 외로운 고립이었다.나는 그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그것이 내가 이번 답사단에 기꺼이 참가한 가장 큰 이유였다.

압록강 하구에서 백두산을 거쳐 두만강 하구까지 국경선 남만주 일대를 가로지르는 것은 대부분 비포장인 흙길 3천㎞,13박14일의 대장정이었다.

모든 답사에는 그 답사에 거는 기대치가 있기 마련인데 이번처럼 나의 통념을 깨트리고 상상력을 증폭시킨 일은 없었다.만감이 교차하고 감탄과 탄식이 그치지 않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우리의 탐사길은 압록강 하구 단둥(丹東)의 동항(東港)에서부터 시작되었다.단둥은 그 옛날 안동(安東)이라 불리던 곳으로 당나라 때 안동도호부가 있던 역사의 도시,중국에서 잠업이 으뜸인 비단의 도시,압록강 뗏목이 운집하는 나무의 도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지만 나의 머리 속에서는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는 국경의 도시였다.

그런데 막상 단둥시에 들어와 압록강변으로 나아가 신의주를 바라보는 순간 국경선에 대한 나의 상상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국경선이라면 철책선이 둘러쳐 있고 총 들은 병사들이 밤낮으로 경계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그러나 단둥시에는 그런 국경의 장치나 국방의 긴장이 어디에도 없었다.

사진으로 너무나 낯익은 반동강 난 압록강 철교는 관광의 명소로 되어 있고 그 옆으로 나 있는 조중단교(朝中端橋)는 그 날도 기차와 자동차와 사람들이 국경을 오가고 있었다.그처럼 국경은 우리의 삶은 보호하는 테두리이자 바깥세계 대륙으로 나아가는 대문이기도 한 것이다.

압록강 상에는 양국의 고깃배와 유람선이 이쪽저쪽을 넘나들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그 것이 놀랍고 신기하여 안내를 맡은 옌볜의 작가 유연산 선생에게 물었다.

“북한 배가 강 가운데를 저렇게 넘어와도 됩니까?”

“물론입니다.강에는 국경선이 없답니다.”

우리는 압록강 유람선 랴오단(遼丹) 제2호에 올라탔다.유람선은 이성계의 회군으로 유명한 위화도 앞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하구 쪽으로 내려가면서 우리에게 구경 잘 하라는 듯 신의주 쪽 강변으로 바짝 붙여 서서히 몰아주었다.

강변엔 낚시꾼도 있고 빨래하는 아낙네들이 셋씩 넷씩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그리고 한쪽 강기슭을 돌아서자 천둥벌거숭이로 미역을 감던 하동(河童)들이 물 속에 깊이 들어가며 부끄러움을 감추고 있었다.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그 애잔한 모습에 옆에 있던 신경림 시인은 눈시울을 붉히며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단둥을 떠나 우리는 동북방향으로 뻗어있는 길을 무작정 달릴듯 달렸다.때는 늦가을,옥수수와 벼가 누렇게 익은 만주벌판은 금빛을 띠고 길가엔 만발한 코스모스가 가을의 시정을 한껏 풍기고 있어 산천과 들녘의 풍광이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압록강은 정말로 아름다운 강이었다.지류를 제외한 본류의 길이만도 7백90㎞,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큰 강이며,중국에서도 명나라 때 지리지인 ‘황여고(黃輿考)’를 보면 양자강,황허와 함께 3대 하천으로 꼽은 장강이지만 조금도 사납거나 험한 데가 없다.

이 세상에 이처럼 유순한 흐름과 부드러운 강줄기와 명징스런 물빛을 가진 강이 또 있을까 싶다.예로부터 압록강을 처녀의 강이라고 불렀던 이유도 이제 남김없이 알만 하였다.

유홍준 <영남대 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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