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의 길] 개성은 '경협·화해의 특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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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4면

2001년 9월 22일 오전 9시, 개성공단 내 봉동역. 서울역에서 이날 오전 7시30분에 출발한 화물열차가 도착했다.

열차는 2000년 9월 18일부터 1년 동안의 공사 끝에 복원한 경의선을 따라 1시간30분 동안 달렸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8㎞ 떨어진 군사분계선을 지난 지 20여분, 6㎞ 거리의 판문점에선 15분 만이다.

열차에는 지난 1일 가동을 시작한 시범공단 내 45개 신발 공장에서 생산하는 수출용 스포츠화 등에 쓸 고무 원료와 부자재가 가득 실려 있다.

봉동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북한 하역 인부 20여명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지역 북한 근로자는 이들을 포함해 전용공단 안 2백여 공장에서 24시간 3교대로 근무하는 기능공까지 모두 1만여명. 2008년까지 3개 공단을 조성해 1천2백여개 업체가 가동하면 북한 근로자는 16만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역사를 나서자 오른쪽으로 개성공단의 시범공단(1공단) 1백만평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의선 철도 복원에 맞춰 나란히 신설한 남북한 연결도로와 북한의 평양~개성간 기존 고속도로 사이에 자리잡았다.

신발.섬유.전자 전용공단 안에 입주한 공장들이 일제히 가동에 들어갔다. 경의선 왼쪽 아래 지역에 들어설 2, 3 공단도 부지조성 작업이 한창이다.

송악산 주변에는 박연폭포와 만월대.선죽교.왕건왕릉 등을 돌아보는 남한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한의 여러가지 노력이 어우러져 개성은 이제 남북경협의 전초기지로 활짝 문을 열게 됐다.

◇ 남북경협의 모델 개성〓개성공단은 북한 개성직할시 관할인 개성시 및 판문군 평화리 일대에 조성된다.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이곳을 평화리로 직접 명명한 것으로 알려져 정상회담 이후 더욱 활성화된 남북경협의 상징이 되고 있다.

현대는 전체 사업부지 2천만평 가운데 ▶1단계로 내년 9월까지 사업비 3천여억원을 들여 1백만평 규모의 시범공단을 완공하고▶2공단(2002~2004년) 3백만평▶3공단(2005~2008년) 4백만평을 단계적으로 완공할 계획이다.

1공단에는 남한에서 설비를 이전하기 쉽고 공장 건설 기간도 짧은 신발.섬유.전자 등 경공업 위주로 정했다.

전자업종의 경우 우선 전자회로 연결부품인 단자와 콘덴서, 발전기용 철심코어 생산업체가 입주할 예정이다.

이는 일손이 많이 필요한 업종이며 인건비가 남한의 10분의1 수준인 북한 인력과 남한 기업의 기술을 접목하기 쉬워 우선적으로 유치하기로 했다.

분양가는 수도권 시화공단의 70%선인 평당 40만원선으로 결정할 전망이다.

2공단은 자동차부품.기계.전자.컴퓨터 업종을 유치하며, 3공단은 기반시설이 마무리되는 시기에 맞춰 자동차조립.정보통신.소프트웨어 등 첨단산업 분야로 확대해 복합 공업단지로서 세계적인 수출 전진기지로 육성한다.

현대아산은 입주업체에 북한 근로자 교육.인허가.통관 및 관세납부 등을 일괄 처리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곳에서 생산한 제품은 대부분 남포와 해주항을 통해 제3국에 수출된다.

◇ 개성은 관광명소로도 부상〓현대는 공단조성과 함께 육로를 이용한 개성지역 관광사업도 이때부터 본격화할 계획이다.

현대는 2000년 9월 이전에 송악산 자락에 유서깊은 개성의 유적과 자연환경을 고려해 공원과 녹지공간을 충분히 갖추고 호텔.쇼핑몰 등 편의시설.학교 등을 갖춘 배후 신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

이는 부지 1천2백만평에 15만가구의 주택단지를 짓는 사업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올해 안에 개성 시내와 공단 부지를 시찰하는 관광을 시범적으로 시작할 계획" 이라며 "내년 9월 남북연결도로가 개통되는 대로 하루 8천~9천명씩 연간 30만명 규모의 개성관광단을 유치하겠다" 고 말했다.

현대는 서울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해 1시간40분 만에 개성에 도착, 오후 5시까지 10여곳의 관광지를 둘러보고 돌아가는 하루짜리 관광객을 주로 유치할 계획이다.

2박3일~4박5일 관광객은 개성공단의 배후 신도시에 세울 호텔에서 묵게 된다.

◇ 풀어야 할 과제 많아〓현대아산 관계자는 "개성 시범공단은 부지를 조성하면서 공장을 함께 지을 예정이므로 내년 9월이면 가동할 수 있다" 고 말했다.

현대는 9월 말까지 실무협의와 부지측량.토질조사를 마치고 2001년 1월에 착공해 9월 초 신발.섬유.전자 업종의 공장 가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정부가 나서 착공하는 경의선 철도와 통일대교~개성간 남북연결도로도 시범공단이 가동하는 내년 9월 완공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북한 인력 관리의 자율성을 비롯, 남한(기업)과 개성공단간 자유로운 왕래 보장, 도로.전력 등 사회간접자본(SOC)문제 해결, 제품의 판로 확보, 공단 건설에 필요한 자금 확보 등 개성공단의 성공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수출입은행 배종렬 선임 연구원은 "개성공단 조성사업은 1년 안에 서둘러 짓는 단기사업이 아니라 중장기 프로젝트" 라며 "북한.미국과의 관계개선 문제와 도로.철도.항만 등 SOC의 확충이 먼저 이뤄져야 하므로 낙관하기는 이르다" 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 관계자는 "북한은 나진.선봉 지구의 실패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며 "이를 교훈삼아 개성특구에서는 모든 사업권을 남한 기업 등에 넘겨 자본주의 방식을 따르기로 해 예상보다 사업이 빠르게 진척될 것" 이라고 주장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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