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셋이 ‘축구 정글’서 웃는 힘은…가족의 힘, 밥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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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청용(22·볼턴), 기성용(21·셀틱). 프리미어리그를 누비는 이 선수들도 경기가 끝나면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간다. 그라운드에서는 스타지만 밖에선 혼자 밥을 먹다가 가족 생각이 나 울컥 눈물을 쏟는 또래 유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파 축구 스타 3인방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박지성 “아버지 여기예요”=맨유는 지난 주말 버밍엄시티와의 원정경기에서 1-1로 비긴 후 카타르 도하로 4박5일간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따뜻한 곳에서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15일 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맨체스터 윔슬로의 집으로 돌아온 박지성은 곧바로 자신의 차를 몰고 길을 되짚어 공항으로 갔다. 밤늦게 한국에서 날아온 아버지 박성종씨를 마중 나간 것이다. 아들 덕분에 박씨는 일 년에 수차례 한국과 영국을 오간다. 박지성은 시간이 나면 늘 공항으로 달려 나온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집에서 기다리기에는 좀이 쑤시기 때문이다. 어차피 집에 있어도 별로 할 일도 없다. 요즘 박지성 아버지의 가장 큰 바람은 아들이 정겨운 배필을 만나는 것이다.

◆이청용 ‘간장 두 통 공수작전’=영국에도 폭설이 내렸다. 볼턴은 아스널전과 선덜랜드전이 잇따라 연기됐다. 체력을 더 키워야 하는 이청용은 모처럼 푹 쉬었다. 하지만 영어 공부는 빼먹지 않았다. 일주일에 세 번은 집에서 30분 거리의 올드햄에 있는 랭귀지 스쿨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아직은 초보지만 통역 없이 동료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FC 서울 시절부터 이청용은 영어 단어장을 가까이하며 지냈다. 중·고교 시절을 호주에서 보낸 기성용이 영어에 능통한 걸 늘 부러워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져 함께 사는 에이전트 형님과 같이 밥을 지어 먹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얼마 전 간장이 떨어졌다. 볼턴 인근에도 한인 수퍼가 많지만 소속사 김승태 대표가 간장 두 통을 서울에서 공수해 왔다. 해외파들은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이 많아 웬만한 여자들만큼 요리를 잘 한다. 이청용은 “아직은 요리 실력보다 설거지 실력이 더 좋다”며 웃었다. 즐겨 먹는 음식은 라면. 찬장에는 초코파이 등 한국 과자도 잔뜩 쌓여 있다.

◆가족과 해후한 기성용=스코틀랜드 글래스고를 덮친 폭설로 13일 예정됐던 경기가 연기됐다. 학수고대했던 데뷔전이라 기성용은 몸이 더 근질근질하다. 정신적으로도 조금 들떠 있고 불안하다. 그런데 15일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가 글래스고로 찾아왔다. 지난해 12월 23일 인천공항에서 헤어진 후 약 20일 만에 가족을 다시 만났다. 급히 떠난 아들을 위해 부모님은 무려 200㎏에 달하는 짐을 싸들고 왔다. 기성용이 평소 아끼던 가재도구와 어머니가 손수 장만한 음식이다. 항공사에 통사정해서 초과 요금을 깎은, 사연 많은 짐이다. 혼자 호텔에서 생활한 기성용은 곧 새집으로 이사한다.

기성용은 17일 자정(한국시간) 셀틱 파크에서 열리는 폴커크와의 홈경기에 출전할 예정이다. 일정이 늦춰진 덕분에 스코틀랜드에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가족과 함께할 수 있게 됐다.

맨체스터=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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