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제이콥의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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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독일 점령 폴란드 유대인 거주지(게토)에는 희망이 없다.

매일 천장에 목을 메는 사람들만 늘어갈 뿐. 통금시간인 밤 8시가 가까워올 때, 신문지 한 장이 바람에 날린다.

뭔가 소식이 없을까 싶어 정신없이 쫓아가던 제이콥(로빈 윌리엄스). 그만 금지구역인 독일군 부대내까지 침범해 독일군에게 발각, 주임 장교실로 끌려간다.

거기서 듣는 라디오 방송 한 대목. "조심하라. 러시아군(독일군의 대항군)이 인근 4백㎞까지 진군했다."

'제이콥의 거짓말' 은 제이콥이 들은 이 한마디 '희망' 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제이콥이 얼떨결에 친구에게 이 소식을 귀띔하는 순간 "제이콥이 라디오를 가지고 있다" "곧 해방군이 온다" 는 소문이 무섭게 번지고 제이콥은 유대인 마을의 작은 영웅이 된다.

라디오를 가지지 않았다고 말해도 소용없자 제이콥은 차리리 희망을 주자고 맘먹고 아예 거짓을 중계하는 희망의 전령사가 된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학살을 배경으로 한 코미디란 설정이 다소 위험해 보이지만 암울한 상황 속에서 토해내는 웃음이 절묘하다.

'바이센테니얼맨' '플러버' 등 코미디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보여준 연기를 상상하면 암울함과 웃음이 조화를 이룰까 싶지만 그는 참혹함을 배경으로 사랑과 희망을 차곡차곡 잘 건져올린

다.

또 탄탄한 시나리오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살려낸다.

2차대전 최대 비극의 순간들 중 드물게 훈훈함을 느낄 만한 사건들을 잘 골라 엮은 영화라고나 할까. 하지만 시종일관 로베르트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 가 머리에 떠오른다는 점이 이 영화의 약점이 될 지도 모르겠다. 게토를 경험한 유대인 작가 쥬렉 베커의 작품을 원작으로 했다.

피터 카소비츠 감독. 23일 개봉.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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