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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문의 새 길] 5. 통일민족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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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21세기 통일시대를 희구하는 민족담론. 궁극적으로 남북 통일을 민족주의의 완성단계로 본다.

그런 바탕에는, 지금까지의 민족주의 논쟁이 불구(不具)였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외세에 의해 분단이 고착화하는 등 우리는 아직도 준식민지.사대시대에 살고 있어 이를 극복하는 것만이 민족주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민족주의는 파시즘적 국가주의로 규정한다.

'통일민족론' 에서는 남북한 양국의 국가연합 형태의 통일도, 외세가 개입된 비주체적인 단일국가로의 통일도 거부한다.

통일은 자주를 기반으로 한 민족 내의 '특수한 관계' 에서만이 올바르게 정립할 수 있다고 본다. 남북 사이의 국제관계로 파악하면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민족.민족문제.민족주의 등 민족담론은 식상할 정도로 많이 들어온 개념이지만, 그 내용은 천의 얼굴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서로 다르다.

이처럼 시기와 지역에 따라 민족담론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적실한 개념정립을 위해서는 '지금 여기' 라는 주체적 구체성에서 출발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흔히들 민족담론을 "우리 것이 최고야!" 식의 비천한 감정이나 몽매한 자아 인식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민족담론은 자신을 바로 세우는 주체성의 문제일 뿐 아니라, 세계를 과학적으로 독해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컨대 한말의 의병은 세계를 중화주의에 따라 중화.소중화.야만으로 구분하였고, 개화파는 선진자본주의를 기준으로 세계를 개화.반개화.미개화로 나누었다.

이처럼 의병과 개화파는 정치노선에서는 서로 정반대였지만, 보다 근원적인 세계관, 즉 자신들이 선호하는 선진 헤게모니을 중심으로 세계를 하나의 방향으로 인식하였다는 점에서는 완전 동일하다.

개화파는 중화주의의 억압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의병을 경멸하였지만, 그들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침략성을 보지 못하였다.

이처럼 의병과 개화파는 모두 자신이 선호하는 선진문명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침략적 억압성을 보지 못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표면적 현상을 넘어 본질적 모순관계에 입각하여 세계를 독해하지 못하였다.

중화가 사대로, 개화가 식민으로 경사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결함은 대개 민족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허위성과 연결되어 있었다.

오늘날을 일컬어 흔히 세계화의 시대라고 한다. 우리가 현 세계화의 선진성만 주목하고 그 패권주의를 보지 못한다면, 의병.개화파의 실패를 비극적으로 다시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비극의 고리를 끊고 주체적으로 세계화를 맞이하기 위한 선결 과제가 다름아닌 통일이다.

'통일민족론' 은 외세가 개입된 분단을 넘어 세계화 시대를 주체적으로 대처하는 길이며, 나아가 사대.식민의 역사적 유산을 청산하는 길이다.

다시 말하지만 통일민족론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과학이다. 먼저 이것은 분단 발생기의 여러 비밀들을 과학적으로 해명해 준다.

극우로 분류될 정도로 우익이었던 김구가 우익적 정치체제라는 남한을 선택하지 않고 통일운동을 개시한 일, 이승만 단독정권이 반북.반공을 표방하면서도 식민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일, 해방 직후 분단 반대세력의 슬로건이 '통일' '독립' 으로 짝을 이루었던 일 등은 민족담론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이 러한 통일민족론의 유효성은 아직도 여전하다. 현재 초국가적 자본과 워싱턴에서 이뤄지는 합의가 지니는 비중, 1990년대 중반 전쟁계획(OpPlan 5027)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와 작전권을 지닌 주한미군의 존재, 분단.통일문제에 관한 미국의 발언권 등등을 고려한다면, 민족담론은 지금도 대단한 엄중성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일부에서는 민족담론을 파시즘으로 비판하지만, 사실 파시즘의 실체는 통일민족론과 배치되는 허위적 국가주의이다.

반공정권에서 북한은 타도와 흡수의 대상이었고, 필요한 것은 휴전선 이북의 국토뿐이었다.

'국토통일원' 이라는 희한한 명칭처럼, 그것은 민족주의란 이름으로 자신의 권력범위를 한반도의 전공간으로 허위적으로 확대하고, 그 만큼의 무게를 더하여 대중을 지배하고자 한 것이었다. 반면 통일민족담론은 진정으로 민주주의의 확대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이제 남북 두 국가를 인정하는 것이 통일민족론의 출발점인가. 아니다. 이것 역시 국가주의의 또다른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한반도에 남.북한 두 국가가 존재하고 있지만, 분단은 두 국가의 자율적 대립이 아니라 외세가 깊게 개입되어 있는 형국이다.

이 상황에서의 양국론은 세계에 대한 공동 대처보다는 또 다른 외세의 개입을 불러일으킨다.

흔히 평화의 개념으로 남북 양국론을 주장하지만, 한반도의 전쟁은 분단에서 비롯되었고, 따라서 통일없이 진정한 의미의 평화란 불가능하다.

실제 국가이익이 핵심을 이루는 현 상황에서는 이란.이라크전, 걸프전 등 친밀한 국가 사이의 전쟁도 드물지 않았으며, 우리 또한 남북.북미간에 많은 전쟁위기가 있었다.

때문에 평화를 위해서도 '남북기본합의서' 에서 "남북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 라는 통일민족론은 심화되어야 한다.

요컨대 통일민족론을 주목함으로써 우리는 현재의 문제를 바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다가오는 21세기를 주체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며, 나아가 역사의 전통에 바로 닿을 수 있다.

그것이 짧게는 좌와 우의 통일을 모색하던 근대 민족운동의 올바른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며, 길게는 오랜 사대.식민의 잘못된 유산을 끊고 역사의 긴 호흡에 바로 서는 일이기도 하다.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

◇다음은 연세대 김호기 교수의 '비판시민사회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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