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전 국가대표 감독 함흥철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언제나 인자하시고 선수들을 친자식보다 더 아끼시던 선생님이셨는데…. 당신이 그토록 보고싶어하시던 2002월드컵 개막이 2년도 채 안남았는데…. "

느긋한 추석 연휴를 즐기고 있던 축구인들은 11일 느닷없는 비보에 할 말을 잊었다.

원로 축구인 함흥철(咸興哲.프로축구 성남 일화 고문)씨가 설악산 등반 도중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것이다. 69세.

언제나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축구 경기가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나 모습을 보여줬던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사고가 있기 이틀 전인 9일에도 咸씨는 목동운동장에서 프로축구 부천 - 대전전을 관전했다.

50년 넘게 등산으로 체력을 단련해 온 咸씨는 추석 연휴를 맞아 동료 산악회원들과 설악산 등반에 나섰다가 소청봉에서 백담사쪽으로 내려가는 용아능선 암벽 코스에서 사고를 당했다.

동료들에게 "이곳은 위험하니 조심하라" 며 직접 손을 잡아 내려보낸 뒤 정작 본인은 발을 헛디뎌 1백m 절벽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6.25동란 직후인 1953년부터 13년간 국가대표 축구팀 골문을 지킨 명 수문장이었던 고인은 54년 스위스월드컵에 출전했으며 1, 2, 4회 아시아축구선수권 우승의 주역이기도 했다.

71년부터 10년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78 방콕아시안게임 남북 공동우승을 비롯해 숱한 국제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지도자로서 고인은 모든 이들에게 '덕장(德將)' 으로 기억된다. 원칙을 지키는 데는 엄격했지만 사석에서는 친아버지처럼 다정했다.

조흥은행에서 가르침을 받은 원흥재씨는 "연습시간에 7초 늦었다고 남산 순환도로를 두 바퀴 돌게 할 정도로 지독했지만 부상한 선수를 직접 마사지해 주실 정도로 제자들을 끔찍이 아끼셨다" 고 회고했다.

김호.김정남.이회택.김호곤 등 펄펄 날던 당대의 스타들도 咸감독의 인품 아래서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고 '아시아 최고' 인 함흥철 사단의 일원으로 조련됐다.

94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던 고인은 공직을 놓은 후에도 축구가 있는 곳이면 직접 자동차를 몰고 달려갈 정도로 축구를 사랑했고 한국축구 발전의 모퉁잇돌이 되기를 원했다.

대한축구협회는 고인의 업적을 기려 대한축구협회장(葬)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발인은 15일 오전 9시. 유해는 고인의 뜻에 따라 화장돼 벽제 승화원에 안치된다.

유족은 부인 이정순(66)씨와 1남2녀.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3410-6915.

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