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비용…40% 싼 게 어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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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상도동 건영아파트에 설치된 열병합 발전설비를 관리 담당자가 점검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서울 상도동 건영아파트 44평형에 사는 주부 백선희씨의 9월분 아파트 관리비는 19만8750원이다. 이 중 전기료는 6만2980원. 전기료 항목 바로 아래에 '전기료 할인 7%'라는 항목이 눈에 띄는데, 백씨의 경우 전기료에서 4408원의 할인 혜택을 받았다.

이런 전기료 할인은 지난해 9월 아파트 단지가 난방.온수방식을 과거 증기식 보일러에서 열병합 발전으로 바꾼 뒤 생긴 것이다. 열병합 발전을 도입한 뒤 에너지 사용량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백씨는 "발전기를 설치하는 데 들어간 비용만 모두 갚으면 3년 후부터 전기료가 30% 가까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박대열 소장은 "열병합 발전을 시작하면서 아파트 단지의 에너지 사용액이 이전보다 28% 줄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줄어든 전기료로 정부에서 장기 저리로 지원받은 발전기 설치비를 갚느라 지금은 일괄로 7%만 할인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고유가 시대에 가정용 에너지 비용이 늘어나면서 열병합 발전으로 바꾸는 아파트 단지들이 늘고 있다. 열병합 발전은 가스나 전기로 발전기를 돌려 열과 전기를 동시에 생산한 후 가구에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기존 아파트들이 대부분 채택하고 있는 증기식 보일러보다 에너지 효율이 좋아 에너지 비용을 20~40% 정도 줄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분당.평촌 등 신도시 아파트들이 이 시스템을 채택해 에너지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는 것을 보고, 아예 정부가 설비시공비를 전액 지원해 주며 장려하고 나섰다. 상환은 전기료 절감분으로 갚아가면 된다.

상도동 건영아파트 주민들도 열병합 발전으로 바꾼 뒤 대부분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아파트(824가구)의 열병합 발전 설치비는 약 16억5000만원. 물론 설치비는 정부의 에너지이용합리화 자금을 장기 저리로 대출받아 주민들의 비용 부담은 전혀 없었다. 주민들은 에너지 절감액으로 이 대출금을 60개월에 걸쳐 갚아나가면 된다. 이 비용을 갚는 동안에도 전기료 할인을 받기 때문에 피부로 느끼는 전기료는 역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열병합발전이 전기료 할인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편리하다고 입을 모았다.

먼저 여름철에는 발전기의 열 생산량을 줄이고 전기 생산량을 늘려 가구별 전기료를 더 낮출 수 있다. 환절기나 동절기에는 열 생산량을 100% 활용해 수시로 난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겨울에도 오전과 오후에 난방을 넣어주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이제는 항상 난방시스템이 작동돼 실내온도를 24~25도로 유지시켜 준다는 것이다. 또 계절에 관계없이 급탕온도가 50~58도(대중탕 열탕 40도 안팎)로 유지돼 언제든지 온수를 마음놓고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꼽았다.

다만 주민들은 열병합발전을 시공할 때 다소의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두 달 남짓 걸린 공사기간 중 20일가량 온수를 사용하지 못했다. 4시간씩 두 차례 단전이 돼 승강기나 냉장고.에어컨 등을 가동하지 못했다고 했다.

건영아파트 입주자 대표 정점현씨는 "열병합발전의 설치로 주변 아파트에 비해 가격이 약간 올랐다"며 "열병합 발전으로 바꾸기 위해 주민들의 동의를 받는 과정이 번거로웠지만 지금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열병합발전을 설치하려면=아파트 주민들이 사용하기에 충분한 용량의 발전기와 시공능력을 갖춘 믿을 수 있는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산업자원부 산하 에너지관리공단에 등록된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 중 하나를 선정하면 된다.현재 ESCO 등록 업체는 모두 157개다. 주민들이 입찰 공고를 통해 ESCO를 선정하면 이 기업이 정부에 설치비용 신청과 공사.사후 관리를 모두 담당한다. 이 때문에 ESCO 선정을 투명하게 하고 설치비용을 최소화해야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커진다. 8월 말 현재 전국 31개 아파트 단지가 열병합발전으로 전환해 운영 중이다.

장정훈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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