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계산의 길, 옥쇄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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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제11보(116~128)=눈앞의 적진(중앙 흑진)은 짙은 어둠 속에서 살기를 품어내고 있다. 시간은 촉박한데 지휘관인 딩웨이 9단은 아직 ‘길’을 정하지 못했다. 그는 끝없이 자문해 본다. 어디까지 침투할 것인가. 옥쇄를 각오하고 백△ 두 점을 모두 살려내고 싶다. 그 가능성은 도대체 몇 %나 될까. 만약 백△ 두 점을 포기한다면? 그때 전국의 형세는? 승산은?

어느 쪽이든 답이 쉽게 나올 수가 없다. 깊숙이 들어갈 경우 난해한 사활 문제에 봉착하는데 수읽기가 너무 어렵고 피곤하다. 직감적으로 죽음이 70이고 삶이 30쯤 되는 것 같다. 딩웨이는 계시원의 초읽는 소리에 꿈에서 깨어나듯 116으로 날아갔다. ‘옥쇄’ 대신 ‘계산’을 선택한 것이다. 이게 치명적인 오판이었다.

사실상의 승부가 이 순간 결정됐다. 박영훈 9단의 표현에 따르면 백은 ‘눈 감고’ 한 발 더 들어가야 했다. 바로 ‘참고도’ 백1을 말하는 것인데 이 경우 흑도 필사적으로 백을 잡아야 한다. 사는 것은 물론 힘들다. 안에서 두 집 내기도 어렵고 연결도 어렵다. 하지만 상대에게도 이 길은 두렵다. 그에 비해 실전은 너무 쉽다.

지그시 눈을 감은 듯 기다리고 있던 이창호 9단은 마지못한 듯 117 받아 두 점을 잡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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