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네 ‘가족’ 이야기 35년 만에 마침표 찍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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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소설가 최인호(65·사진)씨의 연재 소설 ‘가족’이 연재 35년 만에 402회로 막을 내렸다. 『별들의 고향』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스물 아홉의 청년 작가가 1975년 월간 ‘샘터’ 9월호에 연재를 시작한 ‘가족’은 우리나라 잡지 역사상 최장수 연재 소설이다.

샘터사는 “2009년 10월호 이후 건강상 이유로 연재를 잠정 중단해왔던 최씨가 지난 연말 연재 종료 의사를 밝혔다”며 “지난해 10월호에 실린 402회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공식적으로 끝내게 됐다”고 11일 밝혔다. 작가는 『잃어버린 왕국』 『상도』 『제4의 제국』 『해신』 『유림』 등 숱한 작품을 쏟아내면서도 일기를 적어가듯 ‘가족’에 자신의 가족사를 써나갔다.

“난 절대로 절대로 이 아기가 궁색하게는 키우지 않을 것이다. 썅, 맹세한다 맹세해. 나도 남들처럼 피아노를 배우게 할 것이다. 남들처럼 어린이 합창단에도 집어넣어 노래를 부르게 할 것이다. 두고 봐라, 썅. 맹세한다.”(제1회 ‘아기’에서)

35년 전 ‘가족’에서 철없는 젊은 아빠였던 최씨는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겼다. 연재가 한창이던 1987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그 뒤 두 누이와도 작별을 고했다. 네 살짜리 큰 딸 다혜와 두 살배기 아들 도단이는 훌쩍 자라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고, 두 손녀딸 정원이와 윤정이도 ‘가족’에 등장했다.

그러나 작가의 손을 붙든 건 병이었다. 침샘암 수술을 받게 된 최씨는 2008년 7월호 이후 연재를 일시 중단했다. 펜을 놓은 선배를 대신해 후배 소설가 김별아·하성란· 윤성희·백가흠·김도언·김종광·권정현·구경미·손홍규·서재영이 가족에 관한 글을 이어나갔다. 후배들의 성원 덕일까. 작가는 지난해 3월호에 ‘새봄의 휘파람’이란 제목으로 연재를 재개했다.

그리고 그해 8월호에 400회를 기록했다. 소설은 400회 연재 기념으로 지난해 7월 발간된 『가족의 앞모습』과 『가족의 뒷모습』까지 포함해 책으로 묶인 것만 모두 9권. 200자 원고지 8000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마지막 연재가 되어버린 402회에서 작가는 이렇게 밝혔다.

“아아, 나는 돌아가고 싶다. 갈 수만 있다면 가난이 릴케의 시처럼 위대한 장미꽃이 되는 불쌍한 가난뱅이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 막다른 골목으로 돌아가서 김유정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고 싶다./그리고 참말로 다시 일·어· 나·고·싶·다.”

최씨는 ‘가족’을 연재하면서 “나는 아내의 잔소리를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아내의 잔소리는 이른바 ‘정문일침(頂門一鍼)’이라는 것이다.

최씨의 아내 황정숙씨는 전화 통화에서 “(남편은) 회복 중이라 연재를 마친 것”이라며 “왜 이렇게들 궁금해하는지”라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병세가 악화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샘터사는 ‘가족’ 연재 종료를 기념해 2월호에 특집기사를 싣는다. 아울러 독자들의 감사와 기원을 담은 종이학 감사패를 만들어 작가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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